‘조건부 승인’으로 기술 격차 크지만 韓투자에 속도 내야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BOE가 ‘아이폰13’ 시리즈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공급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아직은 국내 기술력이 앞서고 있지만, 투자를 통해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4일 관련업계와 대만 IT 매체 디지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BOE는 애플의 신제품 아이폰13 OLED 패널에 대한 조건부 공급 승인을 받았다. 애플이 요구하는 기준을 BOE가 충족하면 아이폰13에 OLED 디스플레이를 공급할 수 있다.

BOE는 ‘아이폰12’에 이어 신제품까지 디스플레이를 공급할 전망이다. 애플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문을 계속 두드려온 BOE는 아이폰12부터 진입에 성공했다. 시장조사업체 스톤파트너스는 BOE가 1000만~1500만대 가량의 아이폰12에 OLED 패널을 공급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BOE의 맹추격?···“LTPO TFT 기술 격차”

BOE가 애플에 공급하는 아이폰12 디스플레이는 소량이지만, 대상이 OLED 패널이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 업체는 액정표시장치(LCD) 부문에서 저가 물량 공세를 통해 주도권을 장악했고 OLED도 빠르게 추격에 나섰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중국 업체의 글로벌 LCD TV 패널 시장 점유율은 60.7%로 한국(11.2%)을 압도했고 중소형 OLED 패널 점유율도 15%까지 상승했다.

중국이 OLED 부문에서도 가파르게 성장한다면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위축될 수 있다. 한차원 높은 OLED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국 업체들을 따돌리겠다는 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지게 된다.

그러나 양국의 기술 격차는 아직 현격해 BOE가 국내 기업을 따라잡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애플은 아이폰13에서 시리즈 최초로 프로·프로맥스 모델에 저온다결정산화물(LTPO) 박막트랜지스터(TFT) 기반 OLED를 탑재했다. 이는 주사율을 높여 매끄러운 화면 전환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전력 소모는 줄이는 기술이다. BOE는 국내 업체와 달리 해당 기술 구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단 평가다.

문대규 순천향대 디스플레이신소재공학과 교수는 “LTPO TFT는 나온 지 얼마 안 된 기술”이라며 “신뢰성과 품질, 수율 측면에서 비교하면 BOE와 우리나라의 기술 격차는 아직 꽤 있는 편”이라고 밝혔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패널 생산에 필요한 시간과 애플이 시즌 물량을 마감하는 시기 등을 고려하면 9월 중순에 조건부 승인을 받은 BOE가 연내에 제품을 출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국내 업체와 동일한 시기에 들어가지 못한 건 기술력이나 양산 능력에서 차이가 난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BOE가 진일보한 부분에 대해서는 경계가 필요하지만, BOE가 국내 업체를 다 추격했다고 보는 건 기우라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S폴더블 OLED 디스플레이. /사진=삼성디스플레이
S폴더블 OLED 디스플레이. /사진=삼성디스플레이

◇신제품에는 더 높은 기술력 필요···“투자·생산력 앞서가야”

내년 출시되는 ‘아이폰14’ 시리즈에는 더 높은 수준의 OLED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국과 국내 업체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애플은 ‘아이폰14’ 4종 모델에 전부 LTPO TFT 기술을 적용할 것이라고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또 기존의 디스플레이 상단 노치(화면이 움푹 파인 부분)가 사라지고 펀치홀(동그란 카메라 구멍 노출) 디자인이 탑재될 수 있단 전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LTPO TFT 기반에 홀 디자인, 와이옥타(Y-OCTA·터치 일체형 디스플레이)까지 적용되면 필요한 기술들이 더 많아진다. BOE가 기본 패널은 많이 따라올 수 있지만, 여러 기술이 섞이면 또 달라지는 부분이 있어 기술 조합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부연했다.

애플이 2024년쯤 선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폴더블폰도 BOE는 넘어야 할 산이다. 소현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애플이 언제 폴더블폰을 출시할지는 모르지만, 삼성디스플레이는 (2019년 갤럭시 폴드 이후) 3년차를 맞고 있어서 캐파(CAPA·생산력)가 크고, LG디스플레이도 상황에 따라 기술력은 있다”며 “BOE는 아직까지 폴더블 기술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는 강력한 내수시장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을 등에 업고 있어서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이 중국 업체의 추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투자를 강화해 기술 격차를 벌려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문 교수는 “중국 업체가 기술 개발에 나선 지 오래됐고, OLED 캐파도 꽤 되기 때문에 시장에 침투하면서 양국의 격차는 계속 감소할 수 있다”며 “우리 기업이 인력 확보와 기술 개발 등의 투자, 공장 증설을 통한 생산력에서 앞서나가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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