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시기대로 시행 가능성 높아···對EU 철강 수출 큰 폭 감소 예상
“수출 뿐 아니라 내수도 영향”···“피해 최소화·친환경 경제 유도해야”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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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최근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탄소국경세) 도입을 발표하면서 영향권에 든 국내 산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아직 초기단계지만 실제 일정대로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과 함께 사실상 관세로 작용, 무역환경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최근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990년 수준 대비 55% 감축하기 위한 입법안 패키지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세계 최초로 CBAM을 시행하겠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CBAM은 EU 역내로 수입되는 제품 중 역내 제품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제품에 대해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법안에 따르면 EU 수입업자는 매년 5월 31일까지 전년도 수입품에 내재된 탄소배출량을 신고하고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배출량 검증이 어려울 경우 EU가 제시하는 기준값을 적용한다. 인증서 1개는 탄소 1톤에 해당하며 품목별 탄소량은 제품을 생산하면서 생기는 직접 배출량으로 계산한다. 간접 배출량인 제조공정에서 사용된 전기를 생산할 때 발생한 탄소 배출량은 제외된다.   

CBAM 적용 분야는 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전기 등 5개 분야이다. CBAM은 2023년부터 3년간 전환 기간을 거친 후 2026년부터 전면 도입할 계획이다. 패키지 법안은 유럽의회와 유럽연합이사회 입법절차를 통과하면 시행된다. 

/ 표=김은실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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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시행은 할 것이고 어떻게 하든 시기를 맞추려고 할 것”이라며 “법안이 제출된 상태인데 범위와 가격 등 구체적인 부과 정도는 진행 과정에서 통한 조정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올해 발간한 EU 집행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CBAM이 시행되면 EU는 연간 50억~140억 유로의 추가 세수를 거둘 것으로 추정된다. EU에 수출하는 기업의 경우 탄소배출량이 규정 기준보다 많으면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CBAM이 사실상 관세의 역할을 하면서 탄소배출량이 많은 품목은 추가 비용 부담이 늘어 제품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우리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KIEP는 최근 CBAM 시행시 국내 기업의 추가 비용을 시뮬레이션했다. 탄소 가격을 톤당 30유로(약 4만원), 수출품의 탄소 함유량을 376만원으로 가정해 추산한 결과 철강을 가공한 금속제품은 연간 1억3500만달러(약 1539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예상치를 적용하면 1차 철강제품 수출은 2014년 대비 11.69%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또 EU가 배출권거래제를 강화할 경우 역내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돼 환경 기준이 느슨한 역외로 생산설비를 이전할 가능성이 생기며 이때 국내 정책의 탄소감축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탄소 이슈에 영향을 받는 국내 기업들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차를 아예 팔 수 없기 때문에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다”며 “2025년까지 전기차, 수소차 위주로 나갈 계획을 세우는 등 탈탄소 방향에 맞춰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볼보나 벤츠, BMW 등 경쟁 업체도 전기차 전환 등 탄소 중립 움직임에 민감하게 대응한다는 설명이다.

/ 표=이다인 디자이너
/ 표=이다인 디자이너

CBAM 시행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을 국내 업종 중 하나로 철강이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철강회사 관계자는 “CBAM 제도 자체가 경영에 부담이 되는 부분이라 회사에서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면서도 “개별기업이 대책을 마련하긴 어려운 사안이라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우리회사의 경우 글로벌 시장 비중이 넓게 퍼져있고 다른 기업들도 대체로 EU의 비중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며 “그래도 추세 자체가 장벽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가는 건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철강업계는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고 저탄소원료로의 교체 등을 통해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더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산업연구원이 국내 주요 제조업의 탄소중립 현황을 보면 철강 산업은 최하위인 8위에 머물렀다.

수출 시장 뿐 아니라 내수 시장까지 영향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시멘트 기업 중 내수시장 위주 기업들은 큰 영향이 없겠지만 수출 기업은 타격이 있을 것”이라며 “수출물량을 내수로 돌리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국내 시멘트 가격이 하락하면서 출혈 경쟁이 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최근 “CBAM 도입과 관련해 연구 용역을 통해 상세히 분석하고 민관 합동으로 최선의 대응 전략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유럽 외 국가로 탄소국경세가 확산할 조짐도 보인다. 미국은 최근 하원에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탄소 배출 규제가 느슨한 중국을 주 타깃으로 한 법안이지만 시행시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장 위원은 “탄소국경세 자체가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나는 부분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정부에서 최대한 어필해서 장벽이 최대한 줄어들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세계적 흐름을 봤을 때 친환경으로 경제구조를 바꿔나가는 것은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추진하고 있는데 잘 해나가도록 유인책을 잘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CBAM으로 인한 불이익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과 앞으로 친환경 경제를 연착륙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부분 둘 다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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