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에 ‘노조장’ 요구했으나 ‘가족장’ 하도록 설득, 합의 등 개입
法 "직무상 의무 위배되는 부정행위···수수 등 죄질불량"
삼성에서 1000만원 몰래 받아 양복 맞추고 회식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고(故) 염호석씨의 '시신 탈취' 사건에 가담하고 뒷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전직 양산경찰서 정보보안과장 하아무개씨가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고(故) 염호석씨의 '시신 탈취' 사건에 가담하고 뒷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전직 양산경찰서 정보보안과장 하아무개씨가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삼성 노조탄압에 항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염호석씨의 시신을 탈취하고 삼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경찰관들이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정보경찰이 직무상 의무를 저버리고 삼성과 유착했다고 꼬집었다.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최수환 부장판사)는 부정처사후수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경남 양산경찰서 하아무개 전 정보보안과장에 대해 1심과 같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김아무개 전 정보계장에게는 징역 1년2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이들에게 벌금 1000만원과 추징금 500만원을 각각 명령했다. 

재판부는 “하 전 과장이 삼성전자서비스 측으로부터 장례를 가족장으로 바꾸기 위한 합의 중재를 부탁받고 김 전 계장 등에게 부정행위 지시를 했다”며 “이러한 행위는 경찰관으로서 직무상 의무에 위배되는 부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1심의 판결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또 “직무상 의무를 위반해 삼성전자서비스에 편향된 이해관계를 부정한 방향으로 행사한 것”이라며 “그 대가로 1000만원 이상을 수수한 점은 죄질이 불량하다”고 질타했다.

다만 “처음부터 뇌물을 수수할 목적으로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1심의 형이 너무 무겁거나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고 검찰과 피고인들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1심에서 유죄의 근거로 사용된 일부 증거들이 항소심에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잃었지만, 유·무죄 판단에는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일부 증거들은) 검찰이 삼성의 다스(DAS) 미국 소송비 대납 사건을 수사하면서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위법수집증거에 해당된다”면서도 “이를 제외한 나머지 증거들로도 혐의가 인정되어 최종 판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와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범행은 1심과 같이 무죄로 판단됐다.

두 사람은 2014년 5월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 분회장이던 염씨가 강릉의 한 야산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후 발견되자, 삼성 측에서 유서 내용과 달리 노동조합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르도록 염씨 부친을 설득하는 데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하 전 과장은 휘하 경찰들에게 삼성과 염씨 부친의 협상을 돕고, 허위 112 신고나 허위공문서 작성 등을 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있다. 김 전 계장은 브로커와 함께 염씨 부친을 설득하고, 염씨 부친이 노조원들 모르게 삼성에서 합의금을 받도록 직접 도운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선고 당시 “피고인들이 범행을 독자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윗선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보임에도 윗선에서는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며 “상명하복이 강한 경찰 조직에서 피고인들이 상부 지시를 거스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염씨 부친은 삼성 측으로부터 6억원을 받고도 돈을 받지 않았다고 노조원 재판에서 위증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삼성그룹 차원의 노조와해 전략 수립과 실행에 가담했던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은 '증거가 위법하다'는 이유로 지난 2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 전 의장과 함께 기소된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은 징역 1년4개월을 확정받았다. 함께 기소된 30여명 대다수도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일부는 형의 집행을 유예받았다.

/ 그래픽=경찰청 '故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사건 진상조사 심사 결과' 갈무리
/ 그래픽=경찰청 '故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사건 진상조사 심사 결과' 갈무리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2019년 5월 발표한 ‘故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사건 진상조사 심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삼성그룹의 무조노 경영에서 비롯됐다.

삼성전자서비스 지회 조합원들은 2013년 7월 11일 중앙지법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하고, 3일 뒤 노조를 설립했다. 노조는 삼성전자서비스에 두차례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응하지 않았고, 한국경영자총연맹(경총)에 교섭권을 위임했다.

2013년 10월 심상정 의원이 ‘2012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폭로했고, 삼성공동대책위는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의 표적감사, 부당인사발령, 백색테러 등 노조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2013년 10월 31일 천안센터 노조원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13년 12월 20일 삼성전자서비스와 노조 간의 합의가 도출되는 듯 했으나 교섭은 진척되지 않았고, 노조는 2014년 1월부터 부산 및 경남권을 시작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대응해 삼성전자 본사, 삼성전자서비스는 신속대응팀을 구성해 기획 폐업 및 노조 쇠진전략, 그린화 방안 등 전략을 시행했다.

노조는 교섭체결을 강력히 요구하기 위해 삼성전자 본사 서초사옥 상경 투쟁을 세차례 진행했는데, 1차 투쟁을 마치고 양산으로 내려간 염씨(사망 당시 34세)는 2014년 5월 17일 ‘노조장으로 치러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염씨의 부친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노조에 장례를 위임했고, 노조는 이튿날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서울의료원 강남분원에 시신을 안치했다. 하지만 부친은 노조장에 대한 입장을 번복했다.

경찰은 18일 오후 7시 240여명의 경력을 동원해 서울의료원에 출동했고, 노조원과 물리적 충돌해 25명을 장례식 방해 등 혐의로 체포했다. 염씨의 시신은 서울의료원을 빠져나가 부산시 동래구 소재 한 병원에 안치됐다.

김 전 계장은 22일 삼성의 이아무개 부장의 전화를 받고 양산의 한 주유소 뒤편 산길에서 현금 1000만원을 받았다. 김 전 계장은 80만원 가량에 판매되는 양복 14벌을 의뢰해 하 과장 등 양산서 정보보안과 소속 경찰관 14명과 맞춰 입었다. 또 고깃집에서 회식을하며 200여만원을 사용했다. 나머지 금액은 하 과장과 나눠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