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 이득 보는 데 비해 과징금 적어”

 

지난 22일 마곡역 인근 오피스텔 4층 휴대폰 판매점. / 사진 = 염현아 인턴 기자
지난 23일 마곡역 인근 오피스텔 4층 휴대폰 판매점 / 사진 = 염현아 인턴 기자

[시사저널e=염현아 인턴] “손님들마다 성지 가격을 얘기하니까 우리는 일단 맞춰준다고 유인해서 우리 몫(수수료) 줄여서라도 최대한 깎아주는 거죠.”

지난 22일 마곡역 근처 오피스텔 4층에 위치한 이른바 ‘성지(이통사 판매정책에 따라 휴대폰을 싸게 파는 일부 매장)’. 휴대폰 판매점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일반 오피스텔이었다. 간판도 어떤 안내문도 없었다. 1층 로비 층별 안내판에도 이곳의 이름은 없다. 직원으로부터 까다로운 승인 절차를 거쳐야만 이곳 주소를 알 수 있고 불법보조금 지원은 단속을 피해 은밀하게 이뤄졌다.  

성지는 ‘폰파라치 제도(불공정 행위 신고포상제)’ 실시 등으로 최근 경계가 더 삼엄했다. 한 판매 직원은 온라인 상에 공공연하게 알려진 곳들은 최근 매장을 옮겼다고 전했다. ‘뽐뿌’와 ‘휴싸방(휴대폰 싸게 사는 방법)’ 등에 공유되던 성지 좌표(위치)는 인증 없이는 알 수 없게 됐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좌표를 요청하자, 신분증뿐 아니라 명함이나 사원증, 재직증명서 등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돈벌이가 없는 학생은 부모 개인정보도 필요했다. 실제 신분증과 명함 사진을 보내자 성지 위치와 약속 시간을 정해왔다. 카톡에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정확한 주소는 전화로 안내했다.

매장에 들어서자 직원은 신분증 확인을 한 후에야 원하는 기종을 물었다. 아이폰12 미니 64GB 모델에 대해 직원이 제시한 가격은 24만원이다. KT ‘기변(기기변경)’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출고가 95만원 대비 71만원 저렴했다. 9만원 상당 ‘슈퍼플랜 베이직 초이스’ 요금제를 첫 6개월 간 유지하는 조건이다. KT가 지급하는 공시지원금(44만8500원)에 대리점 및 판매점에서 지급하는 추가지원금(공시지원금의 최대 15%)을 받아도 최소 43만원은 내야 한다. 대당 불법보조금 규모가 25만원 이상이란 의미다.

성지는 휴대폰 구매 시 필수적인 계약서 작성 절차도 생략했다. 증빙 자료 하나 없이 업체 말만 믿고 휴대폰을 구입하게 되는 탓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구두로 안내 받은 요금보다 더 많은 금액이 부과되는 등 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간단한 증빙 서류를 요구하자 판매 직원은 “서류 쓸 거면 대리점으로 가라”고 답했다.

더 양성화된 성지도 있다. 휴대폰 집단상가다. 이 곳은 성지 판매가에 대응해 생존하기 위해 치열한 보조금 살포 경쟁이 펼쳐진다. 같은 기종과 구매 조건에도 업체 네 곳이 제시한 가격은 4~5만원 가량 차이 났다. 한 판매 직원은 “성지 가격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우선 최대한 맞춰준다고 유인하는 방식으로 영업하고 있다”고 현장 영업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22일 신도림 테크노마트 8층 휴대폰 집단상가 / 사진 = 염현아 인턴기자
지난 22일 신도림 테크노마트 9층 휴대폰 집단상가 / 사진 = 염현아 인턴기자

이같은 불법 영업 행위는 이통사 간 가입자 유치 경쟁에서 비롯된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는 가입자 유치를 위해 관행적으로 불법보조금을 살포한다. 현재 방송통신위원회가 이통 3사의 단통법 위반 여부에 대해 실태점검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성지에서 불법행위가 여전한 것도 가입자 유치를 위한 경쟁 때문이다.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장은 “불법보조금으로 이통사와 판매 업체들이 이득 보는 데 비해 과징금 처분이 너무 적다”며 “제도 개선을 통해 징벌적 제재를 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통 3사가 판매 업체들에 불법보조금을 돌려줄 여력이 있다는 건 결국 단말기나 통신비 가격에 거품이 있다는 의미”라며 “‘분리공시제(공시지원금과 판매장려금을 별도로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해서 실제 보조금과 장려금에 투입되는 규모를 파악하는 게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분리공시제’가 유통망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근본적 해법이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종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이사는 “제조사 지원금이 공개되면 소비자는 단말기가 저렴해질 것이라 기대하지만, LG전자의 휴대폰 사업 철수로 제조사 간 경쟁이 그리 심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원금은 낮춰서 공시할 가능성이 크고, 오히려 이통사 장려금을 높여 결국 유통망 불법보조금 규모만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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