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 대통령 발언 계기로 이재용 사면론 거론
총수 수감 기업들 사면 기대감에 경영 집중 저해
전제군주 잔재·권력분립에 배치···제도 개선 필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요즘 기자들이 묻는 첫 질문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에 대한 생각이다.” 최근 기자가 만난 한 의원이 건넨 말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4주년 특별 연설 이후 ‘이재용 사면론’이 본격 점화 되고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경제계 뿐 아니라 종교계에서도 사면을 탄원하는 의견을 많이 보내고 있다”며 “충분히 국민의 많은 의견을 들어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유보적 입장이었지만 사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 1월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 등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건넨 돈 중 86억8000여만원이 뇌물로 인정됐다. 

이 부회장이 최종 판결을 받고난 이후 서서히 사면 필요성을 놓고 찬반의견이 나오고 있다. 기자는 이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짚고 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바로 ‘이 부회장의 부재로 삼성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다’,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이다. 이는 지나친 기우이고 삼성의 저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실적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2017년 2월 17일 이 부회장이 첫 법정 구속된 이후 위기론이 제기됐지만 삼성전자는 오히려 더 잘나갔다. 2017년 1분기, 2분기 영업이익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이를 두고 이 부회장이 없어도 권오현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전문경영인 체제 덕분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부회장이 또 다시 수감된 올해 1분기도 매출에서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영업이익도 1년 전 같은 기간 보다 45% 증가했다.  

물론, 이에 대해 눈에 보이는 데이터가 전부가 아니라는 반박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 이 부회장 사면으로 법치주의 훼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국가적 손실을 주장하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삼성은 개인사업체가 아니다. 수만 명 인재가 이끄는 세계 일류 기업이다. 세계적으로 반도체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인재를 모으고 육성하는 데 집중해야 할 시기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죗값을 치르고 있는 총수의 사면 가능성이 있다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가능성이 제로라면 없었을 유무형적 소모를 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는 비단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감옥에 갇힌 총수가 있는 재벌 모두에 해당된다. 죄를 짓더라도 최고 권력자의 시혜로 처벌을 덜어낼 수 있는 사회 제도가 있음으로 생기는 결과다.

대통령의 사면권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사면권은 전제군주 시절의 잔재이다. 무거운 죄를 짓더라도 ‘너의 죄를 사하노라’라는 황제 한마디면 없던 일이 되던 그 시절의 유물이다. 

사면은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뉜다. 일반사면은 적어도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만 특별 사면은 특정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사법부에서 고민 끝에 결정한 판결을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바꿀 수 있기에 권력분립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문 대통령은 특별담화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에 대해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대통령이 결코 마음대로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극히 옳은 말이다. 그렇다면 법적 형평성을 해치면서 대통령이 마음대로 사면을 결정할 여지를 없애는 건 어떨까.

사면권은 이제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에서 어울리지 않는 옷이 됐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고 약속했다. 사면권 폐지는 이 약속을 지킬 좋은 방안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