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업계 “시간 없는데 방통위는 사업자 의견 청취도 안 한다”
방통위 “시간 촉박한 것 인정···다음주 중으로 사업자 의견 청취할 예정”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 사진 = 방송통신위원회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 사진 = 연합뉴스

[시사저널e=김용수 기자] 지난해 12월 시행된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n번방 방지법) 중 ‘기술적·관리적 조치 적용’ 의무가 1년 유예돼 오는 12월부터 적용될 예정이지만 인터넷플랫폼 업계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 혼란을 겪고 있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되지만 아직 방송통신위원회가 구현에 필요한 DNA DB를 구축하지 않아 업계의 우려가 크다. 

정부는 n번방 방지법에서 사업자들이 적용하도록 불법 촬영물 필터링 조치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영상의 특징값인 ‘표준 DNA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제공하겠다고 밝히며 지난해 말 법 의무 적용 시기를 1년 늦췄다. 그러나 일정을 유예한 뒤에도 아직 DNA DB 구축은 물론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의견 청취도 하지 않은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삭제·접속차단 조치를 의도적으로 미이행한 사업자들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 ▲매출액의 3% 이하에 해당하는 과징금 ▲등록 취소 또는 사업정지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말 인터넷기업들의 불법 촬영물 유통방지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일명 ‘n번방 방지법’을 시행해 불법 촬영물 등에 대한 피해자 또는 기관·단체의 신고 및 삭제 요청이 있는 경우 사업자가 삭제·전송차단 등 유통방지 조치를 의무화했다.

신고가 들어온 불법 촬영물 삭제는 쉽게 이뤄진다. 신고가 들어온 영상이란 점에서 삭제 대상이 명확하고, 삭제 또는 전송차단이라는 취해야 할 조치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와 함께 부과된 ‘기술적·관리적 조치’ 의무다. 방통위는 시행령에서 네이버, 카카오 등 일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 또는 연평균 매출액 10억원 이상 사업자 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온라인커뮤니티·대화방·인터넷개인방송·검색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부가통신사업자를 ‘사전 조치 의무 사업자’로 지정했다. 이들 사업자에게 불법 촬영물 등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의무화했다.

검색결과 송출제한, 필터링 등 '사전 유통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의무적으로 이행하려면 모니터링이나 필터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방통위는 이를 준비할 수 있도록 불법 촬영물 필터링 조치에 활용할 수 있도록 영상의 특징값인 ‘표준 DNA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사업자들에게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웹하드 사업자(특수유형부가통신사업자)는 필터링 사업자와 계약을 맺어 불법 성범죄영상물을 차단·삭제하고 있다. 그러나 필터링 사업자마다 추출 방식이 달라 기관끼리 공유하거나 활용하는데 제약이 있다 보니 정부가 DNA '표준' 개발에 나선 것이다.

DNA DB는 각 불법 촬영물의 제목이나 길이, 화질, 파일 형식 등에 따라 추출한 특징값이 담긴 DB를 말한다. 이는 불법 촬영물에 대한 사전 차단이나 삭제 조치에 활용된다. 영상물 DNA가 불법 촬영물 DB와 일치하면 걸러내는 방식이다.

인터넷업계에서는 DNA DB 구축 자체가 쉽지 않을뿐더러, 법에서 규정한 적용 대상 서비스의 범위 및 특성이 천차만별인 탓에 구축된 DB를 개별 서비스에 일괄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점을 고려해 수정 보완하기에는 일정이 촉박하다는 의견이다. 정부가 제공한 기술에 맞춰 별도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쓰이는 비용뿐만 아니라 각 사업자 및 서비스 환경에 따라 우려되는 시스템 과부하에 대해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DNA DB 구축 자체가 쉽지 않다. 모티브가 되는 웹하드의 필터링은 일반적으로 트랙타임이 긴 음란물을 대상으로 해 DNA를 뽑아내기 용이하지만 예컨대 틱톡과 같이 트랙타임이 짧은 영상에서 DNA를 추출한다면 얼마나 많은 DNA가 필요하겠냐”며 “방통위가 DB를 구축하고 솔루션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사업자들의 서비스에 붙일 경우 원활히 돌아가는 지까지 확인이 돼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SNS, 대화방, 온라인커뮤니티 등 3가지로 적용 대상이 나와 있지만 대화방은 카카오톡, 라인, 페이스북 등으로 다르고, 커뮤니티도 블로그, 카페 등 다르듯이 범위가 상당히 넓다. 서비스별 업계의 요구사항을 언제 다 반영해 진행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방통위는 오는 12월부터 사전조치의무사업자에 의무화되는 기술적·관리적 조치가 차질 없이 시행될 수 있도록 추진해 나갈 계획이란 입장이다. 이르면 다음주 사업자들의 의견 청취도 진행할 방침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당초 법에서 주어진 일정이 너무 촉박해서 시행령에서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얻고자 했지만 법과 맞추라는 법제처 심사 결과로 빠듯하게 진행돼서 현재 서두르고 있다”며 “어제 DNA DB 구축과 관련해 10명 정도의 전문가가 모여 실무 회의를 진행했다.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는지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일정에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구축한 DNA DB를 가지고 사업자가 서버나 사업 환경에 맞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어제 회의에서 사업자 의견을 수렴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왔다”며 “현재 사전조치 의무사업자가 100여개가 되는데, 우선적으로 대표 사업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그 의견을 반영해 추진할 것이다. 다음주 중으로 일정을 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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