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시행에도 범죄 온상지 ‘텔레그램’ 못 잡아
국내 기업 옥죄는 규제로 남아

지난해 5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체감규제포럼 등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인터넷 규제 법안 졸속 처리 중단을 촉구했다. / 사진 = 김용수 기자
지난해 5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체감규제포럼 등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인터넷 규제 법안 졸속 처리 중단을 촉구했다. / 사진 = 김용수 기자

[시사저널e=김용수 기자] 20대 국회의 대표적 규제 입법 실패 사례로 평가받는 ‘n번방 방지법’이 지난해 시행됐지만 국내 기업 역차별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다. 여기에 사업자들은 올해 12월부터 불법 촬영물 등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이행해야 하지만 정부가 관련 데이터베이스(DB) 구축에 소극적인 탓에 업계 우려는 커지고 있다. 이에 2편에 걸쳐 반쪽짜리 규제로 남은 n번방 방지법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 [편집자주]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n번방 방지법)’이 지난해 12월 시행됐지만 국내 인터넷 플랫폼 업계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n번방 방지법은 불법 촬영물 등에 대한 피해자 또는 기관·단체의 신고 및 삭제 요청이 있는 경우 사업자가 삭제·전송차단 등 유통방지 조치를 취하게 하는 게 핵심이다.

법 적용 대상은 일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 또는 연평균 매출액 10억원 이상 사업자 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온라인커뮤니티·대화방·인터넷개인방송·검색서비스를 제공하는 부가통신사업자로, 네이버, 카카오, 유튜브, 페이스북 등이 해당한다.

해당 사업자들은 사전 조치 의무 사업자로 지정해, 불법 촬영물 등 유통 방지를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임원 또는 담당 부서의 장을 불법 촬영물 등 유통방지 책임자로 지정해야 한다.

이 같은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사업자들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 ▲매출액의 3% 이하에 해당하는 과징금 ▲등록 취소 또는 사업정지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정작 법 개정의 계기가 된 텔레그램 등 해외업체는 국내법이 실질적으로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인터넷업계는‘역차별 국내 사업자들에게만 의무를 부담하게 해 역차별을 낳는 규제라고 주장했다.

n번방 방지법에는 ‘국외에서 이뤄진 행위도 국내 시장 또는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이 법을 적용한다’는 역외규정이 포함돼 있다.

즉 해외 사업자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국내에 주소나 영업지가 없는 사업자들에 대해선 이용자 보호와 자료 제출업무를 대신하는 국내 대리인을 서면으로 지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텔레그램과 같은 본사 소재지가 불분명한 해외 사업자를 규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역차별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법 시행 전부터 이미 국내 플랫폼 사업자들은 불법 정보가 유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며 “텔레그램이 촉발한 규제지만 텔레그램 규제는 지금도 힘든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법 시행 전에도 여러 차례 문제 제기했다”고 말했다.

n번방 방지법은 지난해 국민적 공분을 샀던 디지털 성범죄, 이른바 ‘n번방 사건’ 이후 마련됐다. 성범죄의 온상지였던 ‘텔레그램’이 법 개정의 계기가 됐다.

지난해 5월 20대 국회는 마지막 본회의에서 ‘텔레그램 n번방’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n번방 사태의 주범 중 한 명인 조주빈이 검거된 지 약 두 달 만에,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지 20일이 채 되지 않는 시점에 입법 단계 최종 문턱을 넘은 셈이다.

n번방 방지법은 입법 추진 단계에서부터 지적을 받아 왔다. 먼저 사적 대화방에서 이뤄지는 불법 촬영물의 유통을 막기 위한 조치는 대화방을 검열하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법 통과 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벤처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체감규제포럼 등 4개 단체는 “공청회 등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급하게 개정안이 처리되고 있다”며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술적 조치를 취하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현재 과도하게 포괄적이기 때문에 지금 상태로 통과되면 위헌”이라고 반발했다.

방통위는 법 시행에 맞춰 구체적으로 ▲불법 촬영물 삭제 요청 주체 확대 ▲인터넷 사업자가 불법 촬영물 판단 곤란할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요청 ▲삭제·접속차단 조치 의도적인 미이행 시 과징금 부과 ▲불법 촬영물 등 유통방지 책임자 지정, 투명성 보고서 제출 등의 내용 ▲사전 유통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 등을 담은 시행령과 고시를 제정했다.

불법 촬영물 등의 삭제 요청 주체 등을 명시하면서 법 개정 초기에 지적을 받은 검열 가능성의 경우 일부 해소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불법 촬영물 등의 유통을 막겠다는 법의 의도와 달리 국내 사업자에 대해 규제 부담만 높인 법이라는 지적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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