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삼성가 상속세 계기 도입 필요성 재점화···“수집가 사후 작품 가치 연속성 도움” 
생계 어려운 미술가들에 도움 기대···“감정평가 미비·공공성 담보 안 돼 시기상조” 우려도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최근 상속세 물납 대상에 문화재 등 예술 작품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재차 나오고 있다. 국내 작품에 대한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주장과 제대로 된 감정평가 제도가 갖춰지지 못해 아직은 시기 상조라는 의견이 엇갈린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가 일가는 다음달 30일까지 약 12조원으로 추산되는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상속 유산 중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로 불리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미술 소장품 규모가 2조원을 넘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면서 미술품 물납제 필요성이 재차 제기되고 있다. 

물납제는 현금 외 다른 자산을 정부에 넘기고 해당 자산의 가치를 세금으로 납부했다고 인정받는 제도이다. 현재는 부동산과 주식이 상속세 물납 대상에 포함된다. 

물납 대상에 문화재난 미술품이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은 앞서 국내 첫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소장하던 국가 보물 2점이 경매에 나오면서 제기됐다. 2018년 별세한 전성우 관장의 가족들이 상속세 납부와 미술관 소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간송미술관 사태에 이어 최근 삼성가 상속세 이슈가 이어지면서 미술계를 중심으로 미술품 물납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 쏟아지고 있다.

관련 세미나를 여는 등 미술계가 활발히 움직이는 가운데 국회에서도 관련 세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 전체적인 세법 개정 방향을 취합하고 있는데 미술품 물납제도 이 중 하나”라며 “다만, 미술품 물납제 관련해서 구체적인 안이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미술계에선 무엇보다 물납제가 생계를 위해 절박한 사안이라고 호소한다. 미술 작가가 작품을 남겨놓고 숨지면 상속자들은 미술 작품 가격의 절반 가까이를 상속세로 내야 한다. 작품을 팔아 세금을 내야 하는데 작품을 사는 사람이 드물다는 설명이다.  

한국미술협회 관계자는 “협회 회원이 3만8000명이지만 순수하게 그림을 팔아 생활이 가능한 미술 작가는 0.1%도 안 된다”며 “작가 중 최저임금이나마 받고 사는 사람도 1%에 못미칠 것”이라고 했다. 작가들은 돈을 잘 버는 사람이 아니라 미술관을 운영하다 적자가 나면 메우기가 어려운게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신소윤 인사전통문화보존회장은 “개인 소장가가 수집했던 미술품들이 사후 자제분들이 가치를 몰라 터무니없는 헐값에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작품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작품 가치를 이어나가는 연속성이 미흡해지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 회장은 “우리 문화의 가치를 우리 스스로 높이는 시점이 됐다”며 “일각에서는 삼성 좋은 일 시켜주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 데 물납제가 금방 시행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프랑스와 영국, 일본 등 문화 선진국들이 미술품과 문화재를 물납 제도에 포함해 유명 작품의 해외 유출을 막고 미술관의 질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예술 작품은 가치 판단이 쉽지 않아 물납 대산에 포함되면 조세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가 추산하는 2019년 기준 국내 미술품 매출시장 규모는 약 4146억원이다. 업계에서는 공식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지하시장 규모는 이보다 최소 2배 이상 많을 것으로 추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섵불리 미술품 물납제가 도입되면 편법적인 탈세, 세습에 악용되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는 비판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현 상황에서 미술품 물납제는 시기상조다. 지금 개념정립도 안된 상황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게 특정 재벌의 계략에 이용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며 “물납제는 공공성이 우선인데 삼성이 전시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공공성있게 문화향유권을 누리게 했나”라고 따졌다. ‘이건희 컬렉션’은 관람 가격도 매우 비싸 일반인들은 볼 엄두도 못 내고 소수만 보고 즐겼다는 주장이다. 

황 소장은 “우리나라에서 해외 작품을 제대로 감정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감정평가 인력을 양성하고 법령적인 미비함도 보완하고 모든 상황이 공공성에 초점이 맞춰져 만반의 준비가 갖춰졌을 때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본부 국장은 "1950년에 물납제가 상속세법에 도입돼, 법인세, 양도소득세, 재산세, 종부세 등으로 적용이 확대 돼 왔으나, 조세형평성 문제, 조세회피 문제로 대다수 법에서 폐지되고, 지금은 상속세와 재산세 정도가 남아 있다"면서 “미술품, 문화재가 국민들이 공공적인 문화를 누리는 것은 동의하지만 재벌의 조세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화재 보호가 꼭 상속세로 접근하는 게 맞는지 국가에서 예산을 투입해 매입하는 게 옳은 지 다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권 국장은 “미술품 물납제는 여러 방법과 절차, 부작용에 대한 것들이 충분히 사회적으로 공론화 돼야 가능한 것”이라며 “무작정 반대하는 게 아니라 부작용을 다양하게 검토해서 미술품이나 문화재를 국민들이 누릴 수 있는 어떤 방법이 맞는지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고가 손실을 입으면 안 되기에 가치평가 체계나 부작용에 대한 차단 장치 등이 충분히 마련되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 회장은 “외국도 그렇고 문화재 감정평가가 시시비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건 분명하다”며 “물납제가 시행, 제도화되려면 감정인력을 양성하는 게 필요한데 학계와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주축이 된 감정기구를 설치하는 게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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