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바이든 거부권 행사 가능성 낮게 점쳐···“전례 없고 中압박 명분 약해져”
EU 제소 가능성도···“배터리 수주산업, 리스크 커지면 영업활동에 제약”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미국 국제위원회(ITC)가 LG에너지솔루션 손을 들어주면서LG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기밀 침해 소송도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LG 역시 ‘또 다른 카드’로 SK를 압박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15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은 ITC 판결 후 60일 이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ITC는 제소된 내용만을 바탕으로 심의한다. 대통령은 60일의 유예기간 동안 해당 결정이 공공의 이익을 침해할지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현재 남은 유예기간은 약 55일이다. 

SK 입장에선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처지다. ITC 판결직후 SK는 입장문을 통해 “이번 ITC 결정이 미국의 배터리 산업 생태계 발전 및 전기차 고객 안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전달할 계획”이라며 거부권 행사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바이든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 안팎의 공통된 전언이다. 최근 10년 간 ITC에서 진행된 600여건의 소송에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해선 전무하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는 지식재산권 침해 등을 문제 삼으며 중국을 향한 정치적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ITC의 판단이 미국 공공이익을 침해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LG 배터리가 장착된 전기차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했음에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논란이 됐던 현대자동차 ‘코나EV’ 연속화재를 비롯해 다양한 화재 케이스들을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내 배터리 납품량이 비대해질수록 소비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논리다.

SK 측은 앞선 입장문에서 “SK의 배터리는 10년 이상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에 공급됐음에도 안전성 문제가 일어난 적 없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배터리”라고 우회적으로 LG 배터리 안전성 문제를 지적했다. 코나EV에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도 장착됐으나, 화재가 난 차량에는 모두 LG 배터리가 탑재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화재인지 여부는 아직 확실치 않다. LG와 국토교통부·현대차 등의 합동 원인조사가 진행 중이다.

SK 배터리 공장이 지어지고 있는 미국 조지아주(州) 입장에서도 바이든의 거부권이 최선이다. 해당 투자가 조지아주 사상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막대한 일자리 창출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1공장 완공을 목전에 둔 상황이며 2공장도 이르면 내년부터 시험가동에 돌입한다. 3·4공장 투자도 이행될 계획이었다. ITC 판결 직후 조지아주 주지사는 바이든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으며, 현지 정치권은 재판 이전부터 SK 패소에 대비한 행보를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시절 핵심공약으로 친환경 정책을 내세웠고, 이에 중추가 되는 분야가 전기차와 배터리다. 본인의 공약이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와 미국 내 정치권의 압박으로 중국와의 외교적 분쟁의 논리약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전례 없던 ITC 영업기밀 침해 판결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이번 판세를 뒤집긴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LG에게 마지막 카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유럽 등으로의 소송 확대다. 2019년 4월 LG가 ITC와 SK이노베이션 미국 배터리 법인(SK Battery America) 소재지인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소를 제기한 이유로 “증거개시절차를 두기 때문”이라 소개했다. 소송 당사자가 보유하는 각종 정보 및 자료에 관해 상대방이 요구할 경우 이를 제공해야 할 법적의무를 일컫는다.

승소가 유리한 미국에서 법적 공방을 개시한 전략이었다. 이번 ITC 승소는 다른 지역에서 같은 내용의 법리공방이 재개될 경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LG에너지솔루션 법무실장 한웅재 전무는 지난 11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동일한 사안에 대해 유럽 등 다른 국가에서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면서 “소송의 확대여부는 전적으로 SK이노베이션 태도에 달려있다”고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한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이 ITC 패소로 상당히 불리한 형국에 내몰린 것은 사실”이라면서 “거부권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설사 행사되더라도 또 다른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 설명했다. 또 “배터리는 수주사업인 탓에 장시간 각종 리스크에 노출되는 것이 추후 영업활동에 적지 않은 장애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두 회사가 결국 합의를 통해 이번 공방을 마무리 지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합의금이 최대 난관이다. ITC 판결 이전부터 진행된 합의에서 두 회사는 약 2조원가량의 이견을 내비쳤던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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