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기업은행 시작으로 사모펀드 제재심 시작
첫 제재심부터 CEO 중징계 나올 듯
업계 “CEO 중징계는 부당···행정소송 이어질 것”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가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금감원의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판매 책임자 중징계를 촉구하는 장례식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가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금감원의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판매 책임자 중징계를 촉구하는 장례식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e=이용우 기자] 금융당국과 은행 간의 법적분쟁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이 라임·디스커버리 등 사모펀드에 대한 첫 제재심부터 CEO 중징계를 예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사모펀드 사태 제재 대상에는 신한·우리·하나·기업·산업·부산은행 등 대부분의 시중은행이 포함됐다. 기업은행처럼 현직 은행장들이 제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펀드 상품 책임을 은행장에게 묻는 것은 과도할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근거가 부족하다며 행정소송을 예고하고 있다.  

◇금감원, 사모펀드 책임 추궁에 시중은행 CEO 정조준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라임·디스커버리펀드를 판매한 은행에 대한 제재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금감원은 제일 먼저 이날부터 기업은행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었다. 

기업은행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디스커버리US핀테크글로벌채권펀드, 디스커버리US부동산선순위채권펀드를 각각 3612억원, 3180억원 판매했다. 미국 운용사가 펀드 자금으로 투자한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펀드당 695억원, 219억원 등 총 914억원의 환매가 중단됐다. 기업은행은 또 라임펀드도 294억원어치 팔았다. 금감원은 기업은행이 디스커버리펀드를 판매할 당시 행장이었던 김도진 전 행장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김 전 행장에 대한 중징계를 사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이번 CEO 중징계 사전 통보가 은행권 전반으로 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금융사 임원이 금감원으로부터 해임권고, 직무정지, 문책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중에 문책경고 이상의 징계를 받을 경우, 제재 확정에 따라 금융사 임원은 3~5년간 금융권 취업이 불가능하다. 잔여 임기는 채울 수 있지만 은행업계는 중징계를 받은 임원이 계속 자리를 지키기 어려워 중도에 옷을 벗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행정소송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은행들은 금감원이 판매 회사에 대해 CEO 문책경고 등 중징계를 내리는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이 내세우는 CEO 책임에 대한 근거는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24조와 이 법의 시행령 제19조의 ‘내부통제기준 마련 미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및 시장질서 유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위반행위 등을 방지하기 위한 절차나 기준이 미비했기 때문에 불완전판매가 발생했다며 그 책임을 은행 CEO에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초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 대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게 책임을 묻고 중징계를 내릴 때도 마찬가지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은행들은 현행법상 판매사가 운용사의 투자계획서를 토대로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데 판매사가 운용사의 투자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를 살피고 추적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또 2015년 사모펀드 제도가 개편되면서 투자자의 최소 투자액이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바뀌고, 펀드 운용 사전심사제가 사후신고제로 바뀐 점 등이 피해를 키웠다며 제도적 문제도 지적한다. 

특히 은행업계는 징계의 형평성이 다르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은행법상 은행 임원의 문책경고까지는 금감원장의 전결로 제재가 확정되기 때문이다. 은행과 달리 지주사 임원이나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계 임원에 대해서는 금융지주회사법과 자본시장법에 따라 금감원장은 주의 및 경고까지만 내릴 수 있다. 중징계는 금융위를 거쳐야 한다. 반면 은행에 대해서는 문책경고를 바로 내릴 수 있어 같은 중징계라도 은행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문책 경고를 받는 것 자체가 은행 입장에서는 굉장한 부담이다”라며 “중징계에 해당하는 임원은 임기 중간에라도 옷을 벗어야 할 수 있다. 그만큼 운용사와 달리 은행 입장에서는 같은 중징계라도 피해 정도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은행들은 금감원의 문책경고 등의 중징계가 확정될 경우 행정소송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DLF 사태 당시 중징계를 받은 CEO들이 금감원의 중징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진행한 바 있고, 중징계에 대한 징계효력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인 경험이 있어 이번에도 징계 처분이 내려질 경우 법정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차라리 징계 취소를 다루는 소송에서 책임 소지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은행과 당국 입장에서도 좋을 것으로 본다”며 “앞으로 2~3년 간 업계와 당국과의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기업은행과 경영진에 대한 제재심을 시작으로 신한·우리·산업·부산은행 등에 대한 제재심을 2∼3월 안에 진행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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