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욱 교수 “법원, 11명 폐 손상자 개별 인과 평가 안했다”
“탈리도마이드 등 동물실험서 발견되지 않는 독성 많아”
이규홍 박사 “가습기 살균제 성분과 사람의 천식 질환 인과성 있어”
“인과관계 입증 대상, 피고인의 범행 의도와 행적 돼야”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임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를 받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해당 선고 결과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임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를 받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해당 선고 결과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준영 기자] 최근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업체 관계자 전원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무죄로 선고한 법원 판결에 대해 재판에서 증언했던 과학자들은 판결이 피해자들에 대한 개별 인과평가를 외면하고 한계가 있는 동물실험에 근거했다고 19일 지적했다. 또한 판결문에서 본인들의 증언 취지를 왜곡해 무죄 판결의 근거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이날 관련 재판에 증인으로 참여했던 전문가들은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밝혔다.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를 받은 애경산업·SK케미칼·이마트 등 관계자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동물실험·역학조사 결과 이들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원료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이 폐질환을 유발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에 피해자 조사와 재판 과정에 증인으로 참여한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피해자에 대한 개별 인과관계 평가 없이 인체와 다른 동물실험을 근거로 삼은 점을 지적했다.

박 교수는 “법원은 결정적으로 11명 폐 손상자의 개별 인과는 평가하지 않았다. 기억 편견, 응답 오류, 개인 질환, 전문가 간 판정 불일치, 병리조직 부족 등 뭉뚱그려 11명 개개인 CMIT·MIT와의 관련 전체를 부정해버렸다”며 “피해자가 있는데 그걸 못 믿겠다며 다른 증거를 대라는 거다. 이에 동물실험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은 사실도 왜곡했다. 법원은 ‘11명 대부분이 가습기 살균제 사용기간이 많이 지나 제품명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조사를 거듭하면서 사용한 제품명, 구입처, 구입시기 사용기간이 달라지기도 한다’고 했다”며 “그러나 11명 모두 2개월에서 11개월 사용하고 폐 손상을 입었다. 기억 오류가 일어날 수 없는 기간이다”고 했다.

이어 “법원에 화학물질과 직업 노출이 없었던 아이들의 폐 손상의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제품이 원인이 아닌 증거는 무엇이며, CMIT·MIT 외 다른 원인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양원호 한국환경보건학회 회장은 “건강 피해자와 관련 제품의 사용이 가장 중요한 ‘인과관계’로 포괄적으로 인정돼어야 했다”며 “물질의 유해성 여부는 인체 영향이 가장 중요한 근거다. 예로 국제암연구소의 1급 발암물질은 충분한 증거가 인체에서 나오면 지정되며 실험 동물의 증거나 기전적 증거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물실험 결과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CMIT·MIT 성분이 폐질환을 유발한다고 보기 어려웠다는 판결에 대해 박 교수는 “동물실험은 옵션이다. 독성이 동물실험에서 발견되지 않는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탈리도마이드 등으로 동물실험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독성도 많다”며 “동물실험을 쥐만 아니라 영장류까지 했는데 기형을 발견 못해 수많은 기형아가 태어났다. 동물실험은 사람의 건강을 예방하거나 예측 못한다. 피해 질환 예측 증거로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재판에 또 다른 증인으로 증언했던 한국화학연구원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의 이규홍 책임연구원은 가습기 살균제 성분과 사람의 천식 질환 간 인과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원은 “2011년 이후 가습기살균제 성분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왔는데, CMIT·MIT는 물질 특성상 초기에 인과관계가 밝혀지기 어려웠다. 하지만 점점 물질과 폐질환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증거들이 나왔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연구 결과가 쌓이는 중”이라며 “연구에서 CMIT·MIT를 기도 내 점적투여하고 마우스(쥐)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여러 방법으로 보았다. 조직병리에서는 사람에게서 나타난 천식과 유사한 소견들이 보였다”고 했다.

이어 “폐세척액 검사에서는 천식질환 염증에서 주로 작용하는 호산구와의 관련성이 보였다”며 “신호전달물질분석에서는 천식에서 중요한 제 2형 조력 T 세포와의 관련성이 나타났다. 폐기능검사는 미약 하지만 과민성반응이 보였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마우스 기도내 점적투여 연구에서 CMIT·MIT가 사람에서 일어났던 천식과의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이 연구원은 재판부가 자신의 증언 취지를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원은 “판결문에서는 특정 시험들을 언급하면서 CMIT·MIT가 폐 내 염증 및 섬유화가 관찰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연구책임자인 저도 ‘CMIT·MIT는 PHMG와 달리 폐섬유화와 관련이 없다고 보는게 맞다’고 했다고 인용했다”며 “그러나 심문과 증언의 앞뒤 관계를 빼고 이 증언 부분만 따서 이야기 한다면 이를 읽는 누구나 제가 ‘물질과 폐섬유화의 관계가 없다’ 말한다고 받아들일 것다. 하지만 이 심문은 해당 연구결과로 한정해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해당 연구결과로만은 관련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는 취지로 이야기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특정 시험에 한정해 인과성을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특정 발언을 한정해 인과성이 없다는 취지로 증언했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인과관계 입증은 건강 피해가 아니라 피고인의 범행 의도와 행적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환경보건학회는 “재판의 대상이 피고인의 잘못에서 CMIT·MIT의 질환 발생을 입증하는 과학의 한계로 바뀌었다”며 “형사사건은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하지만 그 대상은 물질과 건강피해의 입증이 아니라 피고인의 범행의도와 행적을 더 엄격히 따졌어야 했다”고 밝혔다.

한국환경보건학회는 “업체들이 CMIT·MIT가 자극성이 강한 물질임을 알면서도 직접 흡입 가능한 제품에 적용했는지, 독성·유해 불확실성을 인지하고도 나중에 문제가 되자 은폐·축소하려 했는지, 상호 공모와 책임 회피를 했는지를 재판이 따졌어야 한다”고 제기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주범인 SK에 대한 단죄가 필요하다. SK는 전체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약 90%에 해당하는 PHMG와 CMIT·MIT 살균제 원료를 공급한 참사의 주범이다"며 "두번째로 많은 소비자 피해를 발생시킨 애경 가습기메이트에 대한 엄벌도 필요하다. 1997년부터 2011년까지 15년간 파란하늘맑은가습기 7만9000개와 가습기메이트 163만7000개 등을 판매해 옥시레킷벤키저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책임기업"이라고 말했다.

 

김성균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교수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주최로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애경산업 전 대표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 관련해 열린 전문가 기자회견에서 성명서를 읽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성균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교수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주최로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애경산업 전 대표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 관련해 열린 전문가 기자회견에서 성명서를 읽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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