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인증방식 통해 중고차 가격 상승”→중고차와 신차 가격 격차 줄며 신차 구매 유도
“장기적으로는 중고차 가격 방어에 따라 신차 가격 인상 부담 낮추려는 의도”
현대차 “중고차 판매 방식 정해진 바 없어···신차 가격 인상은 첨단기술·편의사양 증가 영향”

서울 장안동 중고차 매매 시장 / 사진=연합뉴스
서울 장안동 중고차 매매 시장.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최근 현대·기아자동차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가운데, 이를 두고 신차 가격을 올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중고차 판매로 얻는 수익도 크겠으나, 인증 중고차 방식으로 중고차 가격이 올라 결국 신차 가격까지 상승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선 현대차가 중고차 사업을 시작하게 될 경우 인증 중고차 방식을 통해 운영하며 현재보다 중고차 가격이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인증 중고차 사업을 시작한 벤츠, BMW, 아우디 등 국내 수입차들도 인증 중고차와 일반 중고차 간 가격차이가 상당하다.

9일 국내 자동차 거래 플랫폼 엔카닷컴에 따르면 벤츠 E 220d 아방가르드(17년식, 주행거리 7만5000km 기준)의 경우 일반 중고차는 3680만~4100만원 수준인데 비해 인증중고차 가격은 4250만원으로 약 150만~600만원가량 높았다.

중고차의 경우 차량 상태에 따라 가격차이가 천차만별이나, 업계에선 통상 인증 중고차와 일반 중고차 간 가격차이가 100만~200만원으로 보고 있다.

인증 중고차는 자동차 업체가 연식과 주행거리 등 일정 기준에 맞는 자사 중고차만 가려내 매입한 뒤 소비자에게 되파는 방식이다. 매입 후 수백 가지 항목의 품질 및 안전성 검증을 통한 상품화 과정을 거치게 되며, 판매 이후에도 무상보증을 연장해준다. 이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 중고차보다 가격이 높을 수 밖에 없다.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게 될 경우 인증 중고차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는 중고차 인증 제도를 활용한 오픈 플랫폼을 만들어 기존 중고차 매매업자들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맞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정해진게 없다”며 “현대차가 중고차 사업을 시작한다고 해서 중고차 가격이 오른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현대차가 중고차 판매업을 실시할 경우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또 중고차 가격이 오를 경우 신차와의 가격 차이가 좁혀지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현대차는 신차 구매를 유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가령 현재 신차가격이 3000만원이고, 중고차 가격이 2000만원이라고 한다면, 인증 중고차 가격은 2300만원이 될 것이다”며 “기존에 1000만원 차이 나던 신차와 중고차 가격 차이가 700만원으로 줄어든다면 신차 구매로 마음을 바꾸는 소비자가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장기적으로는 높아진 중고차 가격으로 인해 현대차가 신차 가격을 높이는 데도 부담이 적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중고차 시장 내 감가율은 수입차 대비 현대차가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현대차의 2017년식 쏘나타, G80가격은 2020년 각각 45.7%, 30.7%가 떨어진 반면 벤츠 E클래스는 25.5% 하락에 그쳤다. 또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부문에서는 현대차 싼타페가 3년 만에 32.4%의 감가율을 기록한 반면 BMW X3와 벤츠 GLC는 각각 25.6%, 20.6%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즉, 인증중고차를 운영하고 있는 수입차 브랜드들의 중고차 가격 방어가 현대차보다 쉬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꿔 말해 현대차 인증 중고차를 운영하게 될 경우 중고차 잔존가치가 높아지게 되면서 중고차 가격이 현재보다 오를 것이고, 이는 신차 가격 상승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신차 가격 인상은 수익성을 개선해야 하는 현대차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자동차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현대차 판매도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현대기아차 내수·수출판매는 지난 2014년 333만9733대로 고점을 기록한 이후 2016년 300만대 아래로 떨어졌으며, 290만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포스트 차이나라 불리는 인도시장이 최근 다시 성장하고 있지만, 세계 최대 자동차 판매국인 미국과 중국이 성장을 멈추면서 전체 판매가 주춤하고 있다. 판매량이 늘지 않는 가운데 수익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절감하고 차 가격을 올려야 한다.

실제로 현대차는 최근 신차를 출시할 때마다 100만~200만원 가량 가격을 올리며 수입차와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얼마 전에는 폴크스바겐이 신형 제타를 아반떼와 비슷한 가격에 내놓으면서 판매가 급증하기도 했다.

이에 현대차 관계자는 “신차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단순 수익성 문제 뿐 아니라, 이전 모델보다 첨단 기술이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요소”라며 “또한 기존에는 추가 옵션으로 제공하던 편의사양이 기본으로 적용되면서 가격이 오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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