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전력산업구조개편 논의 후 20년···총 4개 단계 중 ‘자회사 분리’ 2단계만 완성
발전사 경영 효율성 저하·탈원전·신재생에너지 전환 정책과 맞물려 논의 필요성 커
민영화·전기 유통 독점 문제 등 본질 만져야···한전·발전사 등 이해관계 맞물려  

/ 표=김은실 디자이너
/ 표=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이승욱 기자]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와 5개 발전자회사 체제로 나뉜 현 전력산업구조를 다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999년 정부가 추진한 전력산업구조개편 당시 설정한 로드맵이 실효성을 잃은 데다, ‘탈원전’ ‘탈석탄’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국가에너지 정책의 전환이 시도되고 있는 만큼 전력산업구조 개편을 위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배경이다.  

지난 1999년 진행된 전력산업구조개편 논의의 발단은 1994년 2월 ‘공기업 민영화 및 기능조정 방안과 세부추진계획’이었다. 당시 김영삼 정부 출범 2년차인 1994년부터 1996년까지 한전에 대한 경영진단을 하면서 전력산업구조 개편 논의에 불을 지폈다. 공기업 민영화 추진계획의 핵심은 한전에 대한 경영 진단이었다. 이에 따라 공기업 대표격인 한전의 민영화 가능성과 경쟁체제 도입방안을 검토하고 경영혁신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개편 논의를 진행했다. 

이후 1997년 6월 한전에 대한 경영진단이 마무리되자 전력산업구조개편위원회를 구성해 세부적인 계획 수립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민영화를 중심으로 한 구조개편에 대해서는 신중론이 정부 내에서도 우세했다. 

하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와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로 분위기는 급격히 달라졌다. 공기업 매각을 하더라도 외화를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민영화 문제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결과적으로 1999년 전력산업구조개편 방안은 시기적으로 4단계로 구분해 추진 일정이 짜여졌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1단계는 한전을 사업부별로 독립채산제로 운영하고 이어 2단계(2004~2008년)에서는 사업부를 자회사 형태로 분리하도록 했다. 

또 3단계(2008~2010년)은 도매시장 체제를 통한 경쟁 도입을 이뤄내는 시기로 일정을 잡았다. 2010년 이후로 설정한 마지막 4단계는 ‘풀(Pool)’ 제도가 완비된다는 조건 하에 자회사 형태로 분리운영한 영업단위에 대해 민영화를 검토하도록 했다. 

한마디로 당시 전력산업구조개편은 자회사 분리와 민영화 등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면서 2010년 이후까지 장기 로드맵을 짠 셈이다. 하지만 1단계 시작 시점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전력산업구조개편은 사실상 2단계에 머물러 있다.     

경영 효율성 면에서 지금의 지역별 5개 발전사 구조는 적정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5개 발전사는 유연탄과 LNG, 유류, 우드펠릿 등 연료를 개별 회사가 각기 구매한다. 공동 구매를 하지 않으니 결국 원자재 구매가격도 제각각이다. 5개 발전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유연탄의 연료비 평균단가는 동서발전은 톤당 75.22USD(달러)인 반면, 남동발전은 63.18USD로 12.04USD 차이가 났다. 우드펠릿도 평균단가 차이는 14만2005원이었다. 

뿐만 아니라 발전사간 하역 부두를 공유하지 않아 체선료가 증가하고, 화력발전소 규모가 적어 지난 2000년 전력산업구조개편 이후 추진하는 화력발전소의 매각이 용이하지 않은 점도 현재 5개 발전사 체제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또 신규 해외사업 진출 명목으로 중복해 과잉 투자하거나 R&D(연구개발) 투자 역시 겹치는 것도 문제점이다. 

1999년 전력산업구조개편 당시 민영화와 화력발전소의 매각 등 효율성을 추구한다고 했지만, 현재 구조로서는 ‘규모의 경제’를 충족하기 어려운 셈이다. 이는 고스란히 경영 적자로 이어진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5개 화력발전 자회사의 출자회사 56곳의 적자액은 2697억원으로 올해 2분기 기준 출자회사 147곳의 누적적자는 4674억원에 이른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개 발전회사가 나뉘어 고유목적 사업 외에 비연관 분야에서도 무분별하게 사업 확장을 하고 있다”면서 “전력산업구조개편 당시 민영화와 매각에 중점을 두고는 발전량 규모로 획일적으로 회사를 분할하면서 전력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효율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구조개편 모델도 제시됐다. 김정호 의원은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재구조화’를 주장하면서 △화력발전사의 통폐합과 한수원의 전문성 강화 △한수원의 재구조화 △신재생에너지 통합 일원화를 재구조화의 모델로 주장했다.  

김 의원의 안을 요약하면, 우선 분할 이후 경영 효율성이 저하되고 있는 전국 5개 화력발전사는 중부와 남부로 나눠 2개사로 권역을 나눠 통폐합한다. 또 ‘탈원전’ 정책으로 설 자리를 잃고 있는 한수원은 원전과 폐전 전문기업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구조로 탈바꿈한다. 

특히 에너지 분야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 수소연료전지 등은 신재생에너지 발전공기업으로 통합한다. 그동안 각 발전사별로 제각각 추진되면서 중복, 혼재된 신규 사업 부문을 정리한다는 차원이다. 

김 의원은 “세계적으로 에너지 전환이라는 큰 흐름이 있고 한국도 에너지전환 정책이 맞물려 전력산업구조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개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면서 “전력산업의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머리를 맞대 국회에서 공론화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전력 생산과 발전, 유통, 소비 등 여러 단계별로 에너지 전환의 대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김은실 디자이너
/표=김은실 디자이너

문제는 전력산업의 새판 짜기를 두고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단순히 전력산업구조 개편이라는 주제가 통폐합 문제로만 국한하지 않다는 점이다. 전력산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발전자회사가 통폐합 논의는 단순한 조직구조 재편이라는 차원을 넘어 그동안 한전이 독점적으로 점유한 송‧배전과 유통 분야의 독점 체제와 연동되기 때문이다.   

또 이미 지난 20년 전 산업 환경이나 시장 상황을 중심으로 만든 전력산업구조 개편 논의 결과물이 현재 시장 흐름과 맞지 않다는 이야기도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 1999년 전력산업구조 개편 결과물은 발전과 송전, 배전, 그리고 판매 부문까지 수직적으로 분리한 후 인위적으로 조성된 전력입찰 시장에 발전사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안이다. 

임원혁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난 2005년 펴낸 ‘전력산업구조개편:주요 쟁점과 대안’ 보고서에서, “자연독점적인 성격을 가진 송전과 배전 등 망(網) 부문에서 발전 부문을 분리해 이를 수평 분할한 후 투명성이 보장되는 입찰시장에서 전력을 거래하도록 하는 구조개편 방식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선진적인 대안으로 평가됐다”면서 하지만 “전력사태 부작용을 체험했던 미국에서는 전력산업을 수직분리한 후 전력 대부분을 입찰시장에서 현물거래하도록 한 캘리포니아 방식과 다른 대안적 시장 설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전이 독점적으로 갖고 있는 송‧배전과 유통 부문을 다각화하려는 시도도 있어 이해관계가 맞물린다. 지난 8월 재생에너지발전사업자가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소비자(기업)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는 한전과 전력거래소를 통하지 않고도 자율적인 전력구매계약(PPA)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안이다. 하지만 그동안 법안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일부 반발로 실제로 법 개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현재 상대적으로 낮은 전기요금을 개편해야 한다는 논의로 확대되면 더욱 개편 논의 양상은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현행 전기요금 결정 구조 거버넌스를 수정하고 ‘환경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할 필요도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노조를 중심으로 확정적인 안은 아니지만 한전의 재통합 필요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이에 따라 전력산업구조개편 논의를 주도해야 할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복잡한 심내를 드러내고 있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전력구조개편의) 필요성은 이해되지만 이해관계자가 많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전력산업정책연대는 5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에너지 전환과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주제로 토론회를 연다.

이번 토론회는 한국전력공사 산하 전력그룹사 소속 노동조합의 연대체인 전력산업정책연대와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김주영 의원, 송갑석 의원, 신정훈 의원, 이용빈 의원 등이 공동으로 주최한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전력산업정책연대가 준비한 전력산업 수직 재통합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하고 전력산업 지배구조 전환을 위한 새로운 정책 방안을 제안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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