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상황서 유연성 수준 주목
전문가 "재정 투입은 타이밍이 생명"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재정 역할에 제한을 두는 재정준칙 도입을 두고 찬반 논란이 크다. 특히 재정준칙에서 정부의 지출 재량을 어느 정도로 할지, 위기 상황에서 예외 조항은 어느 수준으로 정할지 주목 받는다.

9일 기재부 관계자는 “코로나19 등 위기 상황에서까지 재정준칙을 적용하면 재정 역할을 못하게 만든다. 해외 사례에서도 위기 상황에서까지 재정준칙을 경직적으로 운용하지는 않는다”며 “다만 재정준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제도적 근거는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이달 안에 재정준칙을 발표할 계획이다. 재정 건전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재정준칙은 지출, 재정수지, 국가채무, 수입 등의 지표를 일정한 수치 안에서 지키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 “도입하더라도 충분햔 재량권 확보해야”

재정준칙 도입을 두고 경제 전문가들의 찬반 의견이 갈렸다. 다만 위기 상황에서는 재정준칙 적용의 예외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재정준칙 자체가 위기 상황과 저출산·저성장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정부 역할을 제한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정부의 재량적 지출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는 것이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위기 상황에서 유연성을 두는 예외조항을 적용한다 해도 어떤 상황이 위기인지에 대해 합의된 바 없다. 위기 상황을 설정하는 것부터 논란이 된다”며 “저출산과 저성장, 일자리 감소 등 우리나라의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는 데도 재정준칙은 그 여지를 없앤다. 대규모 재원을 사용하는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는 것도 그 여지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재정준칙이 도입되면 복지 지출과 공공 일자리 등 일반 국민과 서민들을 위한 지출이 가장 먼저 줄어 이들의 어려움이 커진다”며 “재정준칙을 도입하더라도 정부의 충분한 재량적 지출 여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상호 고용노동부 정책보좌관도 “재정 투입의 목표는 국민 생활의 안정이다. 재정 투입은 타이밍이 생명이다. 최대한 빠르게 재정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며 “준칙이 도입되더라도 너무 엄격해선 안된다. 위기 상황에서는 탄력적으로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무리하게 지출 못 늘리도록 법에 포함해야”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재정준칙을 법이나 헌법에 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권이나 정치권이 의무적으로 이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정부는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 2024년 국가채무비율을 58%로 전망했다. 이렇게 가면 재정 건전성을 지킬 수 없다”며 “국회나 정치인들이 무리하게 재정 지출을 늘리지 못하도록 국가재정법이나 헌법에 재정준칙을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재정준칙은 지출과 채무 부분에서 한도를 정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지출의 경우 경상성장률과 세입 증가율의 몇 % 내에서 정하고, 관리재정수지도 연 몇% 내로 정하는 게 실효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김 교수는 경제위기 시 재정준칙의 예외를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준칙 적용의 예외 사항은 실질 성장률이 마이너스이거나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는 상황으로 정해져야 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은 2019년 37.7%에서 2021년 예산안 기준 46.7%로 오른다. 정부의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2024년 국가채무 비율은 58.3%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국제 비교가 가능한 통합재정수지 비율을 기준으로 OECD 36개국 가운데 한국의 건전성 순위는 2019년 19위에서 2021년 2위로 오른다. 이 경우는 코로나19가 두차례 확산(Double-hit 시나리오)한다는 가정에서다.

지난해 한국의 통합재정수지 비율은 GDP 대비 –0.6%이며 OECD 평균은 –3.3%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인 올해 3차 추경까지 고려한 기준으로 보면 이 비율은 –3.9%이며OECD 평균은 –12.7%다. 내년 예산안에 따르면 한국의 통합재정수지 비율은 –3.6%이며 OECD 평균은 –9.2%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내년까지 한국의 국가채무 적자폭 증가율은 OECD 최하위권이다. OECD가 지난 6월 발표한 2019년말에서 2021년까지 한국의 국가채무 적자폭 증가율은 코로나19가 한 차례 확산에 그친다는 기준으로 4.93%포인트 오른다. OECD 평균인 18.61%포인트보다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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