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스타트업 퇴사 직원, 대표 갑질행위 폭로···사임한 대표가 돌연 명예훼손 고소
벌금형 선고에 허위 여부·공익성 등 쟁점 떠올라···무죄 탄원 활동도 이어져

서울 서초동 대법원 입구 전경. /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입구 전경. / 사진=연합뉴스

유명 스타트업 회사 대표의 ‘갑질’을 공론화 한 내부 고발자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피의자 신분이 된 내부 고발자는 사소한 표현의 차이로 허위사실을 주장한 것처럼 돼 버렸다며, 비민주적인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이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A씨는 지난 2017년 3월부터 같은 해 5월까지 인터넷 영상 제작업체 S사에서 근무했다. 그는 지난 2018년 4월 인터넷에 이 회사 대표 B씨가 자신을 포함한 직원들에게 상습적인 갑질을 했다는 주장의 글을 썼다. 항공사 재벌 2세의 갑질이 연일 보도화 되는 시점이었다. 그는 항공사 갑질 문제처럼 스타트업계의 불합리한 문제도 주목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A씨는 B씨가 폭압적이고 강압적으로 직원들을 대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글에서 A씨는 “작은 회의실에 여직원을 불러 ‘니가 뭘 했는데 말해보라’고 15분 정도에 걸쳐 소리를 질렀다” “여직원들은 거의 매일 울었다” “대표는 그룹사에서 자신을 일컫는 ‘미친개’라는 별명을 알고 있었고,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내게 종이를 던지며 ‘나 미친개인 거 알아 몰라’라고 하던 걸 잊을 수 없다”고 적었다.

A씨는 회식문화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그는 “무슨 지병이 있어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모두 소주 3병은 기본으로 마시고 돌아가야 했다” “어떤 날은 단체로 룸살롱에 몰려가 여직원도 여자를 초이스해 옆에 앉아야 했다”고 주장했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사연, 이후 이어진 퇴사 절차에 대해서도 적었다. A씨는 “이 사람이 새로운 엘리트라면 단언컨대 한국에 미래는 없다”고 했다.

A씨의 주장은 다수의 언론을 통해 보도화 됐고, B씨는 사과문을 올린 뒤 사임했다.

B씨는 SNS를 통해 “고성을 지르고 온갖 가시 돋친 말들을 내뱉으며 직원들을 괴롭혀 왔다”며 “회식을 강요하고, 욕설로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 것도 사실이다”고 고백했다. 이어 “이번에 깨닫게 된 저의 부덕함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풀어가야 할 끝나지 않은 숙제라 생각한다”며 “이번 기회를 빌려 그동안 저의 부족함으로 고통받고 회사를 떠난 직원들, 그리고 현재 직원들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적었다.

B씨는 A씨에게도 사과했다. 그는 “이 글을 빌어 얼마 전 SNS에 글을 올린 퇴사 직원(A씨)에게도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 직접 만나 사과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던 것 같다”며 “제가 건강한 한 인간으로서 바로 서고 직원들에게 올바른 대표의 모습을 보여줄 때, 그렇게 해서 ‘신뢰’라는 말을 감히 할 수 있을 때 덕분에 ‘제가 사람 되었다’고 감사의 말과 함께 진심어린 사과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라고 적었다.

◇ 앞에선 사과하고 뒤에선 명예훼손 고소···1심은 벌금형 선고

B씨는 A씨의 글이 올라온 당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취지의 장문의 메시지를 A씨에게 보냈다. B씨는 관련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통해 A씨에게 연락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B씨는 돌연 A씨를 고소했다. A씨 측에 따르면 B씨는 당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사과문을 게시했을 뿐, 진정한 사과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검찰은 A씨의 주장 중 일부가 허위고, B씨를 비방할 목적이 인정된다며 그를 재판에 넘겼다. ‘소주 3병’ ‘룸살롱’ ‘초이스’ 등의 표현이 문제가 됐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동부지법은 “회식을 할 당시 속칭 파도타기를 하거나 게임을 하면서 벌주를 마시게 하는 등 다소간의 강제성을 띠는 음주방식으로 술을 마신적은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음주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라는 다른 직원들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무슨 지병이 있어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모두 소주 3병을 기본으로 마시고 돌아가야 했다’라는 주장이 허위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 가라오케 주점에서 도우미가 동석한 사실은 있지만, 대표 B씨가 속칭 ‘룸살롱’에서 여직원들에게 스스로 유흥접객원을 선택해 동석하도록 한 사실이 없다는 한 직원의 진술을 바탕으로 이 부분 A씨의 주장이 허위라고 봤다.

법원은 “피고인(A씨)은 미필적으로나마 자신의 글이 허위일 수 있음을 인식했다고 봐야 한다”며 “적시한 글의 내용, 표현방법과 전파방법, 그 동기나 경위 등을 모두 고려하면 피해자(B씨)를 비방할 목적으로 거짓된 사실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 “허위 아니고 허위 인식도 없어···공익적 목적 고려해야”

A씨는 해당 주장이 허위가 아니고, 허위라는 인식 또한 없었다고 주장한다. A씨의 변호인은 “파도타기 등 음주를 강요하는 사내 회식 문화가 엄연히 존재했다”며 “B씨는 회식 자리에서 직원들이 권하는 대로 술을 마시지 않으면 불쾌함을 겉으로 드러내는 등 사실상 음주를 강요했다”고 말했다.

룸살롱과 관련해서도 변호인은 “B씨가 여직원을 동반해 간 곳이 룸살롱인지 가라오케인지는 A씨가 SNS에서 전달하려던 메시지의 논점이 아니다”라며 “남성이자 회사 대표가 여직원을 포함한 직원들을 여성 유흥접객원이 나오는 업소에 데려가는 것 자체가 비윤리적이고, 강압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회사 대표인 B씨가 ‘여직원을 룸살롱에 데려가 여자를 초이스 하도록 한 것’과 ‘여직원을 가라오케에 데려가 룸으로 여성 유흥접객원을 불러 옆에 앉혀 접대하도록 한 것’은 실질적으로 다른 사실이 아니라는 게 A씨 측의 주장이다.

아울러 A씨 측은 내부 고발이 비방할 목적이 없는 공익성을 띤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스타트업을 비롯한 중소기업에도 대기업과 같이 부당한 사내문화가 존재함을 알리고, 그 개선을 요구하는 논의를 위해 직장갑질을 밝히게 됐다”며 “A씨가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행위는 미디어컨텐츠 업계 및 스타트업 기업문화의 개선이라는 사회적 관심과 이익에 대한 것으로, 오로지 공익을 위한 것이어서 비방할 목적이 없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이 사건과 같은 공익제보가 유죄로 인정된다면 앞으로 공익제보자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적시한 내용이 진실이고,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인된다고 본다. A씨가 적시한 내용이 진실이고,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면 정보통신망법상의 명예훼손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한편, A씨의 무죄를 탄원하는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공동소송 법률플랫폼 ‘화난사람들’에는 지난 5일 무죄 탄원인을 모집하는 글이 올라왔다. 탄원서는 향후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될 예정이다.

/ 그래픽=공동소송 법률플랫폼 '화난사람들 '홈페이지 갈무리
/ 그래픽=공동소송 법률플랫폼 '화난사람들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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