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수용능력 한계, 후판수요 급증없어···철강업 활력엔 역부족
적자위기 철강업계, 후판가격 인상요구 거세질 듯···첨예대립 전망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3사가 카타르로부터 100여척의 액화천연가스(LNG)선 주문을 일궈냈다. 조선용 후판을 공급하는 철강업계도 수혜가 있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있지만, 효과는 미미할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오히려 이번 계약을 계기로 후판가격을 둘러싼 두 업계의 줄다리기가 보다 치열해질 전망이다.

5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철강업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발발 이후 전방산업 부진에 따른 철강수요 부진으로 심한 고충을 겪고 있다. 상황이 이럼에도 용광로 가동을 멈출 수 없어 제품생산이 이어지고 있다. 전기로 가동중단 등 생산량 조절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재고부담을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조선용 후판은 자동차 강판과 더불어 철강업계의 양대 수익원으로 꼽힌다. 이번 ‘카타르발 수주낭보’가 후방산업인 철강업계에도 호재가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 이유다.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100여척을 동시에 주문하더라도 발주는 순차적으로 이뤄지며, 자연히 선박제작 역시 긴 시간동안 나눠 진행되기 때문이다.

조선소에서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선박은 제한적이다. 통상 주문받은 순서에 따라 건조된다. 국내 주요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선박들은 앞서 수주계약이 체결된 물량들이다. 조선소별로 차이가 있지만 최대 2~3년간 일감은 선제적으로 확보한 상태다. 카타르로부터 주문받은 선박들은 빨라도 이 기간 이후에나 건조에 돌입할 수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번 카타르의 대량주문은 선제적으로 도크(선박을 건조·수리하는 공간)를 확보해 가능한 빨리 선박을 인도받기 위한 조치”라면서 “아무리 많은 선박을 주문 받더라도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선박은 제한적인 까닭에, 조선소가 늘어나지 않는 이상 연간 후판소모량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이번 LNG선 계약소식은 향후에도 안정적인 후판공급이 가능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 평가하면서도 “코로나19 사태 발발 후 수요부진과 재고급증의 이중고를 즉각적으로 해소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조선업황이 개선되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철강업계의 사정을 고려해 후판가격 인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카타르 LNG선 대량수주가 현실화 되면서 후판가격을 놓고 긴 시간 줄다리기를 해 온 두 업계의 갈등이 더욱 첨예해질 것으로 내다본다. 후판가격 협상은 조선 3사가 각각이 개별 철강업체들과 실시한다. 현재 국내 조선사들은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 등 국내업체 사용비중이 높다. 이 밖에도 일본·중국 등으로부터도 후판을 공급받고 있다.

후판가격은 2016년 이후 3년 넘게 동결상태다. 철강업계는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점과 대승적인 차원에서 철광석 원가폭등 등 인상요인이 충분했음에도 납품가격을 동결해 왔던 것”이라며 현실적인 가격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조선업계는 “아직 정상화에 이르지 못했다”면서 동결을 유지해 달라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후판가격 협상은 연 두 차례 실시된다. 상반기 협상결과에 따라 하반기 납품가격이 결정되며, 하반기 협상결과에 따라 이듬해 상반기 납품가격이 결정되는 방식이다. 양 업계는 서로 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며 장기간 협상결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일부 업체 간 협상에서 소폭 가격상승이 도출되기도 했으나 철강업계는 상승요인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철강업계는 실익이 대폭 축소되며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적자위기에 놓였다. 협상테이블에서 가격인상 요구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다만, 조선업계가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LNG 화물탱크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 GTT에 로열티 지급 등 지출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을 당시보다 개선됐긴 하지만 조선업계는 여전히 적자를 나타내고 있어 흑자전환 등을 위해서라도 후판가격을 고수를 강하게 요구할 전망”이라면서 “이번 카타르 대형수주로 철강업계의 인상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을 것으로 점쳐지면서 양 업계 간 힘겨루기가 본격화 될 것”이라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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