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 중앙대학교 석좌교수

김진형 중앙대학교 석좌교수
김진형 중앙대학교 석좌교수

인공지능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 바둑대국이 벌어졌던 지난 2016년 이후 줄곧 주목받는 신성장동력이었다. 최근 ‘한국판 뉴딜’ 핵심 기술 중 하나로 또 다시 인공지능이 거론된다. 산업에서도 쓰임새가 확산되는 추세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국내 성장동력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다. 2016년 이후 4년이란 기간이 짧았을 수도, 또는 인공지능에 대해 거는 기대감이 너무 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궁금하다. 한국의 인공지능은 어떻게 커나가야 할까.  

김진형 중앙대학교 석좌교수는 K-인공지능 육성 방안으로 교육과 산업에서의 발빠른 활용을 제시한다. 수학을 중심으로 초‧중‧고 컴퓨터 교육을 강화하고 대학에서도 적극적으로 컴퓨터 관련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만이 거스를 수 없는 인공지능이란 대세에 적응하는 길이라고 한다. 

김 교수는 국내 ‘1호 인공지능 박사’다. 지난 1983년 UCLA에서 인공지능으로 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그는 인공지능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민간이 출자해 설립한 인공지능연구원(AIRI) 초대 원장을 지냈다. 김 교수에게 우리나라 인공지능이 나가야 할 길을 물었다. 

우리나라 인공지능 기술 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인공지능이 발전하려면 교육이 중요한데 우리나라 교육은 무너졌다. 우리나라는 수학포기자(수포자)가 너무 많다.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면서 소프트웨어 교육도 함께 해야 한다.

우리나라 수학교육은 달달 외우는 교육이다. 가령 원주율을 배운다면 개념이나 원리에 집중하기보다는 ‘3.141592’라는 숫자를 외우는 것에 집중한다. 수학을 중심으로 교육부터 먼저 살아야 인공지능 강국을 꿈꿔볼 수 있다.

대학 교육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대학 컴퓨터 전공자는 외국에 비해서 적은 편이다. 서울대학교 1년 정원이 3000명인데 이중 컴퓨터공학부 전공자는 55명이다.(2021년 학년도부터 70명으로 늘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 컴퓨터공학 전공자는 1년에 1000명이나 된다.

외국 대학이 컴퓨터공학을 육성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없앤다는 지적만 한다.

정부 인공지능 육성은 여러 해 됐지만 신성장 산업으로 자리잡지는 못한 것 같은데

모든 산업이 인공지능 산업이다. 보고 듣고 의사결정하고 이를 자동화하는 것이 모두 인공지능이다. 알파고의 경우는 인지기능은 없었지만 바둑 두는 인공지능이다. 공장자동화에도 인공지능 로봇이 쓰인다. 인공지능은 전 분야에 걸쳐 쓰인다.

인공지능은 도구산업이다. 컴퓨터와 반도체처럼 모든 곳에 쓰인다. 인공지능을 경쟁력 있게 사용하는 것이 경쟁력을 갖추는 길이다.

인공지능 산업화를 얘기한다면 반도체는 우리나라 강점이 있다. 인공지능에는 반복적으로 계산하는 기능의 반도체가 필요하다. 반도체를 잘 만드는 삼성전자가 우리나라에 있다. 삼성전자도 인공지능 반도체 개발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반도체마저도 우리가 선도하기 보다는 쫓아가야 하는 영역이다. 미국 엔비디아가 선도업체다.

인공지능이 차세대 먹거리가 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우리가 잘하는 분야에 인공지능을 적용해야 한다. 자동차용 인공지능, 철강용 인공지능처럼 우리가 잘하는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능력을 키워 산업의 경쟁력을 더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인공지능 기술 자체를 산업화할 수 있는 역량은 없다. 자체 개발하기보다 구글 등이 공짜로 인공지능 기술을 공개하니 이를 활용하면 된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로 그나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는 한국어 시스템이다. 한국어는 우리나라밖에 안 쓰니 해외업체들이 들어오는데 기술 장벽이 있다. 한국어 챗봇이나 콜센터 시스템은 경쟁력 있게 만들 수 있다.

구글도 다국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긴 하지만 네이버도 경쟁력이 있어 해볼만하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기술을 들여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가

인공지능 분야에서 미국과 기술 수준 격차를 많이들 물어본다. 우리나라는 경제규모 등 여러 분야에서 대충 봤을 때 세계 10위 정도라고 평가하는 것 같다.

그러나 1등과 10등의 격차가 크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선두국가와 다른 국가는 격차가 큰 반면 10등과 20등의 격차는 크지 않다. 1등 빼고는 다 엇비슷하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에 종속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은 기술을 숨기는 나라가 아니다. 논문도 활발히 공개하는 편이다. 우리가 빨리 배워서 이를 이용할 수 있으면 된다.

미국이 계속 기술을 선도하면 다른 나라는 따라가면 되는 것인가

미국은 100년 동안 IT 강국이었다. 미국 외 IT 강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나라는 중국 정도다. 중국도 미국을 따라간다며 IT를 육성한다.

중국의 장점은 데이터다. 인구가 많으니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는 기회도 많다. 중국은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은 나라다. 미국도 겁낼 만큼 데이터 분야에서 역량을 갖췄다.

또 중국은 워낙 인구가 많으니 연구하는 사람도, 발표하는 논문도 많다.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의 상황은 비슷하다.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이를 이용하면 더 좋은 것들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나라가 강한 분야에 인공지능을 적용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1등을 할 수 있는 분야는 반도체와 의료‧바이오 정도다. 의료‧바이오는 성장 속도도 빠르고 기술 수준도 우수하며 연구하는 사람도 많다. 바이오 분야는 성과를 낼 가능성이 있다. 환경문제도 초점을 맞추면 좋을 것이다. 환경은 전 세계적인 관심사다.

인공지능 산업으로 주도권을 잡는다면 우리나라 위상도 올라가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70년 동안 쫓아가기만 했다. 무엇인가를 처음 만들어서 선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최근에는 도전 정신도 점점 사라지면서 안전 제일주의로 가려는 경향마저 생겼다.

체질을 바꿔야하고 변화에 걸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변화를 위해 주어진 시간은 계속 짧아진다. 자동화 기술로 세상 변화의 주기가 짧아졌다. 전 영역에 걸쳐 그렇다.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전문직, 예술작품 영역까지 자동화가 됐다.

앞으로 일자리도 줄어들 것이다. 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슈퍼잡’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인생이 아름다울 것이지만 이외 일반적인 일자리는 줄어든다. 복지도 더 신경써야 할 것이다.

1~2개 국가가 글로벌 패권을 계속 쥐게 된다는 의미인가

앞으로 국가간 헤게모니 경쟁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인도와 중국은 그나마 경쟁력이 있다. 중국 알리바바는 대형 IT회사로 성장했다.

중국 칭화대 학생들의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우수한 인재이며 노력도 많이 한다.

반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IT분야에서 전 세계와 경쟁할 만한 역량이 낮다. 우수한 학생들은 의사나 판사를 하려고 한다.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하겠다는 학생은 찾기 어렵다. 실패 사례가 많이 나오다보니 젊은층의 도전정신이 더 사라지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통신 등 IT 인프라는 최강국이라고 하는데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기술 수준은 꼴찌 수준이다. IT분야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반도체만 메모리 분야 1, 2위 업체가 국내 업체다.

이렇게 된 데는 대학 교육도 문제가 원인이 있다. 대학 정원도 한계가 있는데 전통적인 전공 인원을 줄이려 하지 않는다. 교수들도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

앞으로 교육환경에도 변화가 있을까

대학들도 큰일이다. 전 분야에서 국경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다. 하버드, MIT, 스탠포드 등 명문대학들이 온라인 교육 강좌를 두고 있다. 온라인을 이용한 학위 과정도 있다.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비교도 가능하다. 코로나19 감염 사태는 이같은 변화를 가속화하고 경쟁도 심화시킬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상 변화에 무심했다. 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가 회상회의 솔루션이 없어 중국 것을 가져다가 쓴다. 행정수도가 지방에 분리돼 있는데 이런 환경에서 왜 화상회의 솔루션이 못 나왔을까. 규제가 많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사업은 규제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아이템을 찾기가 어렵다. 원격의료도 보안규제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에 가서 사업을 한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가 어렵다. 단기 아르바이트 인력만 늘어나면 국가 경쟁력이 될 수 없다. 경기가 좋아져도 단기 아르바이트 인력들은 경력직으로 쓰기가 어렵다.

변하지 않겠다고 버티면 안된다. 변화를 해야 한다. 경쟁하고 성장해야 한다. 스타트업이 기존 회사를 이길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는가

시장 자본주의가 인공지능 자본주의로 변해야 한다. 자본의 흐름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혁신의 정도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스마트폰 사례가 그렇다. 얼마나 편해졌는가가 평가의 기준이 돼야 한다.

혁신이 보상을 받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고 인공지능이 혁신의 도구로 활용돼야 한다. 이와 더불어 사회변화를 다 함께 고민해야 한다. 어디까지 허용하고, 허용하면 안 되는지 사회적인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에서 사고가 나면 크게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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