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측 “국민 판단 받을 정당한 권리 무력화” 반발···이르면 8일께 영장심사 예정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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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적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경영권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기소를 앞두고 국민에게 기소와 수사계속 여부를 묻겠다며 판을 흔들었던 이재용 부회장이 검찰의 반격을 받은 모양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4일 오전 이 부회장과 최지성(69)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64)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를 법원에 접수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 등에게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김 전 사장에게는 위증 혐의가 추가됐다.

검찰은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이 2015년 합병되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각종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주식 약 23%를 갖고 있었던 반면, 삼성물산 주식은 없었다. 그런데 합병 조건을 보면 제일모직의 가치가 삼성물산보다 3배 높게 평가됐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지분 확대를 위해 제일모직의 가치는 부풀리고, 삼성물산의 가치는 떨어뜨리는 작업이 이뤄졌다고 의심한다.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제일모직이 지분을 가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 또한 부풀려졌다는 게 의혹의 한 갈래다.

특히 자회사 바이오에피스 회계처리가 도마에 올랐다. 합병 전 바이오에피스를 삼바의 ‘자회사’로 분류했는데, 합병 뒤에는 바이오젠이라는 회사가 바이오에피스에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면서 ‘관계회사’로 회계처리를 바꿨다. 2018년 증권선물위원회는 이를 잘못된 회계로 결론 내렸다.

반대로 삼성물산의 경우 합병을 앞두고 아파트 수주를 미루는 방식으로 가치를 낮춰 ‘자해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진 배경도 수사대상이다.

김종중 전 사장에게는 위증 혐의가 적용됐다. 김 전 사장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제일모직의 제안으로 추진됐고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와 무관하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심사는 이르면 다음 주 월요일쯤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이 구속심사대에 서는 것은 지난 2017년 1~2월 이후 3년 4~5개월여 만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월에 청구한 구속영장은 기각됐으나, 한달 뒤 재차 청구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5개 혐의가 유죄로 판단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2심도 이 부회장의 혐의 상당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고, 이 부회장은 구속 353일 만에 석방됐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을 거쳐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파기환송심 중 삼성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재판장의 입장에 특검이 반발했고, 재판부 기피신청 절차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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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사심의위 절차 영장과 별개로 진행···李 “국민 판단 받을 기회 무력화 돼” 반발

검찰의 영장 청구와는 별개로 이 부회장이 신청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 절차는 그대로 진행된다. 이 부회장 등은 지난 2일 기소 타당성과 수사계속 여부를 수심위에서 판단해달라며 서울중앙지검에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했다.

수사심의위는 시민과 각계 전문가들이 검찰 수사 적정성을 평가하는 기구로 2018년에 만들어졌다. 기소·불기소 여부뿐 아니라 수사 계속 여부,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의 적정성까지 평가하고 의결한다. 출범 이후 8건의 수사심사위가 열렸고, 구속기소 의견이 나온 한 건을 제외한 7건은 공식적으로는 결과가 공개되지 않았다.

수사심의위를 신청한다고 무조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수사 담당 검찰청의 검찰시민위원회가 일종의 ‘사전 심의’를 진행해 수사심의위로 넘길지를 결정한다. 사전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수사심의위가 소집되지 않는다.

수사심의위원회 신청은 이 부회장의 ‘승부수’라는 평가도 나왔다. 수년째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는 동정 여론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삼성 등 기업에 우호적인 여론이 높아진 상황이 이 부회장에게 결코 불리한 상황이 아니어서다. 검사가 아닌 수사심의위원들은 강경한 수사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론에 영향을 많이 받을 여지가 있다.

이런 와중에 검찰의 영장 청구는 이 부회장에게 큰 타격이 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들도 이례적인 입장문을 통해 강한 유감의 뜻을 밝혔다.

변호인들은 “이 사건 수사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도 높게 진행돼왔다.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 위기 상황에서도 검찰의 수사에 성실하게 협조해왔다”며 “국민의 시각에서 수사의 계속 여부 및 기소 여부를 심의해 달라고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 심의신청을 접수했는데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전문가의 검토와 국민의 시각에서 객관적 판단을 받아 보고자 소망하는 정당한 권리를 무력화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다”고 밝혔다.

또 “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사심의위원회 절차를 통해 사건 관계인의 억울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주고 위원들의 충분한 검토와 그 결정에 따라 처분했더라면 국민들도 검찰의 결정을 더 신뢰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부의심의원회 구성 등 필요한 절차를 관련 규정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일정 등은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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