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부터 대기업 릴레이사고···최근 5년 월평균 0.47회 사고발생, 금년엔 0.8회
화학공단과 담벼락만 사이에 둔 주민 불안 커져···근본적 대책마련은 답보상태

지난 3월 폭발사고가 발생한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농지와 민가 뒤로 자리했음을 알 수 있다. /사진=김도현 기자
지난 3월 폭발사고가 발생한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민가와 상당히 가까운 거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김도현 기자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굉음이었다. 새벽 3시였지만 곧바로 눈이 떠졌다. 처음엔 유리창이 깨진지도 몰랐다. 어둡기도 했지만 경황이 없었다. 굉음이 들리고 갑자기 불기둥이 치솟았다.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충남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 거주하는 A씨는 그날 새벽을 이 같이 회상했다. 그가 거주하는 2층 창밖에는 대형 석유화학단지 시설물이 입지했다. 그가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다고 느꼈던 그날은 지난 3월 4일이었다.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한 그날이었다.

당시 사고로 공장에서 근무하던 직원과 지역주민 등 총 56명이 부상당했다. 실제 당시 굉음은 굉장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폭발음이 인접한 당진시와 태안군에서도 들렸을 정도였다. 사고가 발생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오는 11일이면 사고 100일을 맞는다.

그럼에도 현장에는 그날의 사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유리창이 깨진 채 방치된 가게들이 여럿이었다. 롯데케미칼 측의 지원을 받아 나무판자와 아크릴판·비닐 등으로 덧대졌을 뿐이었다. 상인들에 따르면, 롯데케미칼 측과 대물피해 부분에 있어 협상을 이뤘으나 후속조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고가 난 시설은 다른 시설들에 비해 비교적 민가와 가까운 시설인 탓에 주민피해가 컸던 것으로 파악된다. 관계당국의 사고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대산공단은 활발하게 움직였다. 특히 한화토탈 대산사업장 동쪽 출입구와 롯데케미칼·LG화학이 입주한 대산공단 서문이 위치한 독곶1로를 따라 화학물질을 실은 것으로 추정되는 탱크로리와 컨테이너 차량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대산공단 서문 인근에는 각종 현수막들이 내걸려 있었다. 다만 온도차가 상당했다. ‘피해주민 여러분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힘내세요’, ‘롯데케미칼 임직원 여러분 힘내시고 빠른 복구 기원합니다’란 대산공단상생발전협의회의 응원성 문구를 담은 현수막 이면에는 전혀 다른 메시지들이 자리했다.

‘롯데케미칼 임병연 대표이사님 우리하고 독곶에서 같이 살며 죽자’는 현수막에서는 인근 주민들의 분노와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강경한 자세가 엿보였다. 또한 이번 사고와 별개로 추가적인 화학유출 의심사례를 추적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화토탈·LG화학·롯데케미칼 인근에서 원인모를 물질로 차량·유리 변색 피해자를 찾는다’는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

대산공단은 1998년 10월 조성돼 점진적으로 규모를 키웠다. 독곶리와 대산항·대산리 등에 걸쳐 △서산대산일반산업단지 △대죽비축산업단지 △대산컴플렉스일반산업단지 △서산대죽일반산업단지 등이 입지해있지만 일반적으로 대산공단이라 통칭된다. 대산산업단지(대산공단)는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여수국가산업단지 등과 더불어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로 꼽힌다.

3대 석유화학단지지만 대산공단은 여수·울산 등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해당 공단들의 경우 민가·농경지 등과 확실한 경계를 이루고 집약돼 있는 반면 대산공단은 민가·상가들과 인접해 있다. 이들의 경계는 왕복 2차선 도로가 전부였다. 일부 가옥들의 경우 콘크리트와 철조망으로 이뤄진 담벼락 하나만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서해안고속도로 송악IC에서 40km 정도 떨어진 이곳은 국도 38·29번 종점과 맞닿아 있는 외진 곳이다. 공단이 들어서며 많은 것들이 변했다고 전해진다. 논밭을 일구고 어업에 종사하던 작은 마을에 대기업 공장들이 지어지면서 인구가 늘었고, 공단에서 근무하거나 이들을 상대로 장사에 나서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게 인근 지역민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실제 상업시설들은 ‘읍내’로 통칭되는 대산버스터미널 주변과 공단, 대기업 사택 등을 중심으로 자리했다.

대산공단 인근에 부착된 현수막. /사진=김도현 기자
대산공단 인근에 부착된 현수막. /사진=김도현 기자

공단과 함께 마을의 살림살이가 개선됐던 셈이었다. 자연히 주민들 역시 동고동락한 기업들에 30년 가까이 호의적이었다. 그랬던 주민들이 속속 기업에 등을 돌리고 있다. 불안감이 커졌다고 했다. 지난해 5월 17·19일 한화토탈 유증기 유출사고가 주민 불안감을 키웠으며, 롯데케미칼 폭발사고가 도화선이 됐다. 이 밖에도 갖은 사고들이 근래에 집중돼 있다는 점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최근 5년 간 대산공단에서는 총 28건, 월평균 0.47회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는 사정이 심각했다. 2월 한화토탈에서 화학물질을 싣고 대산항으로 향하던 컨테이너 차량이 전복돼 화학물질이 유출된 사고를 시작으로 3월 롯데케미칼 폭발사고, 4월 현대오일뱅크 악취사고, 지난달 LG화학 화재사고 등이 연이어 발생했다. 금년에만 월평균 0.8회 사고가 난 셈이었다.

주민들은 이번 폭발사고 직후 단체를 조직하고 집단행동에 나설 뜻을 밝혔다. 롯데케미칼 폭발 및 화학물질 유출사고 대책위원회(대책위) 이언영 위원장은 빈번해진 사고로 인해 주민들의 불안도 커졌지만 무엇보다 기업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 직후 주민안전을 위한 대응이 부족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 위원장은 “한화토탈 유증기 사고 때 직접 냄새를 맡아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사고 직후 주민들에게 대피하라는 회사 측의 경고는 전무했으며, 롯데케미칼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며 ”현대오일뱅크 사고의 경우에도 새벽부터 악취를 맡고 두통에 시달린 주민들에 회사 측은 아침이 돼서야 병원에 가보라며 마을마다 버스를 보내준 게 전부”라 토로했다. 또 “이마저도 소식을 못 듣거나, 버스가 들르지 않은 마을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공단에서 근무하거나 공단을 상대로 장사하는 인구비중이 높은 지역민들이 이렇게 나서게 된 데는 더 큰 일을 치를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라 본다”면서 “최소한 공단을 마주보고 사는 주민들의 이주나 지역민들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현재 롯데케미칼 측과의 협의가 원만하지 않다면서 현실성 있는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단체행동에도 나설 뜻임을 밝히기도 했다.

대산공단 인근을 오가는 탱크로리. /사진=김도현 기자
대산공단 내 공장에서 나와 민가를 지나치는 탱크로리. /사진=김도현 기자

사고를 낸 기업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추가적인 안전강화 조치를 마련해 재발을 막겠다는 것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 등 오너 및 최고경영진 등이 현장을 찾아 대책마련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기업들이 내세울 대책이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했다. 

한화토탈 유출사고 발생 이후인 지난해 8월 충남도와 한화토탈·롯데케미칼·LG화학·현대오일뱅크 등 대산공단 입주대기업 4곳은 2024년까지 관리감독과 안전·환경분야를 강화하는 데 807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계획이 발표된 지 6개월 뒤부터 이들 4사는 매달 1건씩 각각 사고를 일으키며 체면을 구겼다. 충남도 역시 실효성 없는 단체만 구성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한편, 충남 서산시는 최근 환경부가 공모한 ‘화학사고 예방·대비·대응을 위한 지역대비체계 구축사업’에 선정됐다. 화학안전관리 체계 및 민·관·산 거버넌스 체계 구축과 화학 사고에 대한 지방자치단체 대응역량 강화가 이번 사업의 목적이다. 앞서 서산시는 2018년 ‘화학물질 안전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지난해 5월에는 ‘화학사고 안전관리위원회’를 구성한 바 있다.

이번 사업선정과 관련해 맹정호 서산시장은 “화학사고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시와 시민, 기업 및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화학사고 대비 체계가 구축될 수 있을 것”이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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