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소 의미 “불법성 입증·남용 방지·국제사회 공감대 형성”···기업 불확실성 해소
WTO서 한국, 일본 GATT 1·11조 위반 입증 및 일본 주장 반박 중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제6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제6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일본 정부의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재개하기로 했다. 지소미아 종료는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했다.

2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정부 대표로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나승식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지난 6개월간 정부는 한일 간 수출관리 정책대화에 성실히 임하면서 동시에 일본이 제기한 한일 정책대화 중단, 재래식 무기에 대한 캐치올 통제 미흡, 수출관리 조직과 인력의 불충분 등 세 가지 사유를 모두 해소했다”며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문제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현안 해결을 위한 논의는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 실장은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지금의 상황이 당초 WTO 분쟁해결절차 정지의 요건이었던 정상적인 대화의 진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며 “정부는 작년 11월 22일에 잠정 정지했던 일본의 3개 품목 수출제한조치에 대한 WTO 분쟁해결절차를 재개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WTO에 이 건에 대한 패널설치를 요청해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정부는 WTO 상소기구가 정상 작동하지 않기에 실효성이 없다는 일부 의견에 대해 불법성 입증·남용 방지·국제사회 공감대 형성이란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나 실장은 “이번에 WTO에 분쟁해결절차를 재개하는 이유는 일본이 우리나라에만 포괄허가를 개별허가로 바꿔서 수출제한조치를 하는 것에 대한 불법성과 부당성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조치 위법성에 대한 객관적 입증을 할 것”이라며 “또한 수출허가제의 남용방지, 유사한 조치 사전예방에 효과적이다. 분쟁 과정에서 일본 조치의 부당성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 형성도 기대한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11월 WTO 제소와 함께 일시 중단한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호협정)에 대해서는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작년 11월 22일 지소미아의 효력을 언제든지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우리가 협정의 종료통보 효력을 정지한 상황”이라며 “수출규제 조치 철회는 이뤄져야 한다. 논의 동향에 따라 신중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WTO서 한국 ‘일본 GATT 1·11조 위반 및 일본 주장 반박’ 중요

한국이 수출규제 조치를 지속하는 일본을 대상으로 WTO 제소 절차를 재개함에 따라 이 건에서 승소하기 위한 움직임이 주목받는다.

통상 전문가들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1조와 11조를 위반하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의 근거로 주장할 수 있는 ‘안보상 예외’ 등에 대해 정확하게 반박할 논리와 증거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GATT 1조 1항은 최혜국 대우 의무로 그 위반의 판단 기준은 차별성 등이 있다. GATT 11조 1항은 수량제한 금지 의무에 관한 것이다. WTO 회원국이 수출허가 등을 통해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하지 못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이천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실 무역협정팀 부연구위원은 “한국이 WTO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위법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GATT 1조 1항과 11조 1항을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다”며 “일본은 4대 국제 수출통제체제에 가입한 한국에 대해 포괄허가를 금지했으나 한국보다 낮은 수준의 통제체제를 가진 국가에 오히려 일정 조건 충족시 포괄허가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는 국가 간 차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위원은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 근거로 내세우는 주장과 증거에 대해 제대로 반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수출규제 조치가 GATT 21조에 따른 안보상 예외라는 논리의 주장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이 위원은 “한국은 지난 6개월 동안 일본 측이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며 제기한 한일 정책대화 중단, 재래식 무기 캐치올 통제, 수출관리 조직‧인력 불충분 등의 세 가지 사유 모두 해소했다”며 “한국은 이러한 점을 근거로 일본의 안보상 필요성이 많이 낮아졌다는 것을 주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위원은 일본 측이 GATT 21조의 안보상 예외의 주장으로 활용할 근거로 무엇을 가지고 나오는지도 향후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 ‘지소미아 종료’ 남겨둬···전범기업 자산 현금화 시 일본 추가 규제 가능성

정부는 이번에 지소미아 종료에 관한 사항은 거론하지 않았다. 향후 수출규제 조치 철회에 대한 일본의 입장에 따라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했다. 지소미아 카드를 남겨둔 것이다.

지난해 한국은 일본이 안보상 이유로 수출규제에 나서자 신뢰할 수 없는 국가 간 최상위 안보 협정인 지소미아를 유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종료를 추진했다. 그러자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북한을 견제하며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이 적극 관여했다. 우리 정부는 한일 간 정책대화 기간에는 종료를 유예하겠다고 선언했다.

향후 수개월 안에 일본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일본은 한국에 대해 추가 규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지난 4월 14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이 압류된 자산의 현금화라는 것이 진행되는 경우는 더 문제가 심각해진다”며 “그런 일이 없도록 나도 한국 정부,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 대해 강하게 지적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인터뷰에서 “한국 측이 압류 중인 일본 민간 기업 자산의 현금화를 실행하면 한국과의 무역을 재검토하거나 금융제재에 착수하는 등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했다.

이에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한국 정부는 정치적 이유로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 조치를 미룰 수는 없다. 이 판결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씨가 100세다. 인권문제도 중요하다”며 “이 경우 일본은 추가 규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아소 다로 부총리는 한국에 강경한 입장”이라고 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이 이처럼 추가 규제에 나선다면 이는 한국을 더 이상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며 “이 때는 미국의 눈치와 관계없이 분명히 지소미아를 종료해야 한다”고 했다.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일본은 한국을 믿지 못하겠다며 안보 문제를 근거로 수출규제에 나섰다. 그런데 최상위 안보 공유 체계인 지소미아를 유지하자는 일본의 주장은 억지다”며 “결국 근본문제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은 국제사회의 원칙인 피해자 중심주의로써 전향적 자세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호사카 교수는 “현재 일본 자민당 내에서 추후 치러질 중의원 선거에서 코로나 대응 실패 등 아베 총리로는 참패할 수 있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올해 8월 24일 이후 아베 총리 퇴진 가능성이 있다”며 “이후 한일 관계에 대해 아베 총리와 다른 입장의 총리가 오지 않는 한 한일 관계 어려움은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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