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실패사례 있지만 세대교체 이룬 후 분위기 달라져 “가능성은 충분”
배터리 부문과 비교해 실질적 협력 및 시너지 내기까진 현실적으로 시간 필요

지난 1월 2일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년합동인사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2일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년합동인사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한 만남을 성사시킴에 따라 다른 부문에서도 협력을 이어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시스템(차량용) 반도체 부문이 주목되는데, 과거와 달리 시장에선 긍정적 전망을 내놓는 모습이다.

이 부회장과 정 부회장의 만남은 배터리 업계 뿐 아니라, 재계 전체에서 화제가 됐다. 지난 기업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사업적으로 엮이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제네시스 G90을 타는 것만으로도 갖가지 뒷말이 나올 정도로 두 사람 만남에는 업계 관심이 쏠렸다.

이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빅2’인 두 대기업이 사업협력 부문을 넓혀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 부문이 차량용 반도체다. 반도체와 완성차 부문에서 글로벌 기업인 두 회사가 협력을 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시기적으로도 자연스럽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부문 강화에 나서고 있고, 현대차 역시 자율주행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허나 반도체와 관련해선 배터리 부문보다도 더 즉각적인 협력이 이뤄지긴 쉽지 않다는 게 자동차 및 IT(정보기술)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대차의 경우 인피니언 등으로부터 해외 반도체 회사들과 강력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피니언은 반도체 업계 최초로 현대·기아차 ‘올해의 협력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독일 업체인 인피니언은 미국의 사이프러스사를 인수하며 사실상 차량용 반도체 부문의 ‘원톱’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는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부문에선 절대적인 세계 1위지만 차량용 반도체와 관련해선 아직 도전자 입장이다.

과거 사례를 봐도 두 기업의 반도체 부문에서의 협력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9년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손을 잡은 바 있다. 당시 지식경제부까지 나서 두 회사의 협력을 도우려 했으나 결국 흐지부지됐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업계 인사는 “그땐 두 회사가 손을 잡을 이유가 부족했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11년 전과 상황이 달라졌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반도체 부문에서 삼성과 현대차가 손을 잡는 시나리오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단 세대교체가 이뤄졌다는 점이 큰 이유다.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 시절만 해도 두 기업은 외부 기업, 특히 국내 기업들과 손을 잡는 것을 꺼렸지만 이재용 부회장, 정의선 부회장 시대가 열리면서 이런 흐름이 깨졌다. 두 부회장이 일선에 나선 후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외부인사 중용은 물론, 스타트업 등을 인수하며 경쟁력 강화행보를 이어왔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제 사실상 양 회사의 오너가 바뀌었고 기술적 환경이 변해 과거와 상황이 다르다”며 “또 정부 입장에서도 외국기업이 아닌 국내기업끼리 MOU를 하면 연구개발(R&D) 자금을 대줄 명분이 충분하기 때문에 두 기업의 반도체 부문 협력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 왔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허나 반도체와 관련해선 즉각적인 시너지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분석이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큰 시장은 MCU(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와 아날로그인데, 두 부문 모두 삼성전자가 두각을 보이는 부문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향후 시장이 커지면 긍정적으로 양사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자동차에 쓰이는 반도체 부문 중 D램 비중은 1%대에 불과하지만, 향후 자동차에 더욱 기술이 들어가게 되면 삼성도 엑시노스 등을 탑재하는 것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두 오너의 만남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한편 양사는 이번 만남과 관련 모든 사업적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