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미중 갈등과는 차원 달라”···일단 ‘관망세’ 유지하더라도 선택 방향 잡아놔야 할 시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픙 중국  미국 대통령과 시진픙 중국 국가주석. / 그래픽=디자이너 조현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그래픽=디자이너 조현경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국내 기업들의 긴장감도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은 섣불리 움직여선 안 되지만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해선 이제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할 상황이라고 충고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갈등 격화는 코로나19 창궐과 무관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이 코로나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압박하고, 중국이 이에 반발하는 양상으로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그동안의 충돌과는 파급력이나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예전 미중 갈등은 상호의존적 관계는 전제로 하고 이어져 왔지만 이번엔 민족주의적 성격도 들어가면서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국가의 충돌로 국내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삼성전자다. 단순 소비재가 아닌 핵심 IT부품인 반도체를 전세계에 공급하다보니 미중 갈등 속 핵심키를 가진 회사로 부각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화웨이에 계속 메모리 공급을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미국의 블랙리스트인 화웨이와 손잡고 미국정부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사실상 힘든 일이다. 이미 영국은 5G 구축사업에 화웨이를 배제하는 방향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반도체 기업이 부각되고 있지만 산업 전반적으로도 그 어느 때보다 두 나라의 갈등을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기업인들은 “미중 갈등 문제와 관련해선 우리 회사의 주장이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어느 때보다 긴장하는 입장을 취했다. 미중갈등 사태의 심각성을 방증하는 모습이었다.

현대·기아자동차 등 자동차 업계의 경우 부품 공급 등과 관련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큰 문제로 부각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중국으로부터 와이어링 하네스가 공급 안 돼 생산중단을 받았는데, 이 부품만 해도 80%이상이 중국에서 나온다”며 “단일품목 하나만 공급문제가 생겨도 이런 상황인데 중국시장 규모나 기존 공장투자 등을 생각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원료를 철강 산업 역시 미중 갈등을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다. 철강업계 인사는 “중국의 수출길이 막히면 곧 원료를 대는 한국 철강업계의 수출길도 막히게 된다”며 “그렇다고 가장 중요한 시장 중 하나인 미국을 포기할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상황 속 기업들이 택한 전략은 일단 ‘버티기’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상황 추이를 지켜보며 사태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인사는 “지금 상황에선 특정 국가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위험하다”고 전했다.

허나 미중 갈등이 지금까지와 달리 극으로 치달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기에 과거와 달리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해선 방향성은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율 교수는 “일단 기업들로선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맞지만, 향후 세계경제가 더 안 좋아져 기축통화권 중심으로 블록화가 이뤄질 시점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방향성은 잡아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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