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일본 수출규제 이달 철회 가능성 희박”···장기적 철회 가능성도 제기
무역업계 “자의성·불확실성 없애야”···“수출규제, 국제법 앞세운 국제법 위반”
일본 극우 ‘윤미향 사건’ 활용에 “시민단체 아닌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 주도해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8일(현지시간) 오후 일본 총리관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8일(현지시간) 오후 일본 총리관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일 관계 전문가들은 이달 안에 수출규제를 철회하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일본 정부가 이행할 가능성이 낮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문제와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 변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 기업의 피해가 오히려 커지면서 장기적으로 사실상 수출규제 철회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결국 한국의 요구에 일본 정부가 이달 어떤 수준의 답을 하느냐가 일시 중단한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재개와 지소미아 종료에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2일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한국 대상 화이트리스트 제외 및 불화수소 등 3개 품목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원상회복 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취하며 제기한 한일 정책대화 중단, 재래식 무기 캐치올 통제, 수출관리 조직‧인력 불충분 등의 세 가지 사유 모두 해소됐다며 한국으로의 수출에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 후 한국 정부와 기업이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 노력으로 피해를 줄였으나 여전히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여부를 허가하는 상황에서 자의성과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정부와 기업인들도 코로나19로 국내외 경제가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이러한 리스크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22일 한구무역협회 관계자는 “무역업계는 일본 수출규제에 맞서 국산화와 수입 다변화로 큰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자의성에 따른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수출규제를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우리 기업들은 수출 규제가 풀려서 일본산 소재 부품 옵션을 선택지에 추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지금과 같은 위기 시 더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이러한 한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한 근본 문제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는 여전히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한 상태라는 주장을 했다.

◇ “이달 수출규제 철회 가능성 낮아”

실제로 지난 18일 일본 정부는 외교청서에서 한국 대상 수출규제 조치의 근본 원인인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해 이는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결됐다며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한 상태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일본 정부는 외교청서에서 한국이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입장을 표명했던 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 점 등을 거론하며 “한국 측의 이러한 부정적 움직임이 멈추지 않아 한일 관계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주장도 반복했다.

한일 관계 전문가들은 아베 총리가 이달 안에 수출규제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아베 정권이 이달 말까지 수출규제를 철회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이대로 철회하면 자신들의 수출규제 조치가 잘못됐다는 인정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일본 내 코로나19 확산과 아베 정권이 차기 검찰총장으로 낙점한 인사가 물의를 빚고 사임해 사실상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아베 총리가 이달 안에 수출규제를 철회할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며 “일본 정부는 한국 법원에서 매각 명령이 나오면 작년보다 더 큰 수출규제 임직임에 나선다는 언급을 해왔다. 아베 수상 관저에서는 수출규제를 풀었다가 매각 결정이 나오면 이러한 입장을 뒤집어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한국 기업이 아닌 오히려 일본 기업 피해가 커지면서 장기적으로 수출규제를 철회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은 현재 코로나19와 도쿄 올림픽 연기 등으로 혼란한 상황이다. 한국과 대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일본 산업 내 악영향도 커지고 있다. 추후 사실상 수출규제 철회 방향을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이달 안에 수출규제 철회에 대해 답을 달라는 한국 정부 요구에 일본 정부가 어떤 태도와 뉘앙스를 보일지 관건이다. 일본 정부의 태도에 따라 한국이 일시 중단한 WTO 제소 재개와 지소미아 종료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호사카 교수는 “한국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철회 기한을 이미 두 달 연장해줬기에 이번에도 가만히 있기는 어려워졌다”며 “이달 안에 일본이 한국 요구에 대해 추후 철회 방향성을 보일지 등 어떤 수준의 답을 할 지가 WTO 제소 재개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국제법 위반이기에 이러한 상황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일본은 수출규제 근거로 안보상 사유로 제한할 수 있는 전략물자를 언급했지만, PPI(위험행상지수) 전략물자 관리시스템상 일본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무리다”며 “또 일본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1,10,11조를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5월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세계 200개 국가의 전략물자 무역관리 제도를 평가해 발표한 ‘위험 행상 지수(PPI)’에 따르면 한국은 17위, 일본은 36위였다. 한국은 국제 공약과 법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본은 ‘법규’와 ‘확산 금융을 막을 능력’에서 한국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WTO에 제소하면서 양자협의 요청서에 일본의 WTO 협정 의무 주요 위반사항 3가지를 담았다. 일본이 3개 품목에 대해 한국만을 특정해 포괄허가에서 개별수출허가로 전환한 것은 WTO의 근본원칙인 차별금지 의무, 특히 최혜국대우 의무에 위반이라고 했다. 수출제한 조치의 설정·유지 금지 의무도 위반이라고 봤다. 일본 정부는 자유롭게 교역하던 3개 품목을 각 계약 건별로 반드시 개별허가를 받도록 하고 어떤 형태의 포괄허가도 금지했다. 또 일본의 조치가 정치적 이유로 교역을 자의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역 규정을 일관되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한다고 했다.

도 위원은 “일본은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국제법을 앞세워 일본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본 주장에는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피해자중심주의가 없다. 국제법 악용인 일본의 통상법 위반에 대해 WTO 제소를 재개해야한다”고 했다.

◇ 일본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윤미향 사건 향방 주목

한일 관계에는 앞으로 중요한 사안들이 있다. 한일 모두 일본 전범기업 자산 현금화와 윤미향 사건 향방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받은 일본 전범기업에 대해 자산 현금화 관련 조치가 올해 안에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14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이 압류된 자산의 현금화라는 것이 진행되는 경우는 더 문제가 심각해진다”며 “그런 일이 없도록 나도 한국 정부,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 대해 강하게 지적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호사카 교수는 “그러나 한국은 이를 미룰 수 없다. 이 판결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씨가 100세다. 인권 문제는 외교 이상으로 중요하며 이춘식씨가 사망할 경우 국내적 반발이 거셀 것”이라고 했다. 또 “현금화 조치를 계속 미루면 ‘한국이 강하게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신호를 일본에 주게 된다”고 말했다.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회계 의혹 관련 윤미향 전 이사장 사건도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극우성향의 산케이 신문은 지난 20일 이 문제를 거론하며 수요집회를 멈추고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칼럼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을 표명하라고 했다.

이에 호사카 교수는 “일본 우파 언론과 인사들은 이 사건을 재료로 활용해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비화시키고 있다”며 “극우파들은 이를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한 문재인 정부 책임, 피해자 문제 외면한 정의기억연대’라는 주장으로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호사카 교수는 윤미향 사건에 대해 국내 위안부 피해자 시민단체 간 다툼의 원인도 있다며 "독도와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정부가 주도하듯이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도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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