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수요 감소···산유국 증산경쟁 더해지면서 1분기 ‘조단위 적자’
석유화학·주유소활용 신사업···“정유업 적자 보전할 정도의 실익기대 힘들어”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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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이른바 ‘정유업계 빅4’의 올 1분기 합산적자는 4조4000여억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창궐하고, 한 때 마이너스를 기록했을 정도로 국제유가 폭락하면서 타격이 컸다. 비(非)정유 신사업을 통해 위기를 탈피하려 하는데 현재 업계 상황 등을 감안하면 그마저도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유업은 특성상 외부요인에 취약한 구조다. 원유를 수입해야 하는 만큼 국제유가 변화폭에 따라 마진율이 널뛰기 때문이다. 국제유가의 경우 일반적인 수요·공급 외에도 다양한 요인들이 반영된다. 원유생산지의 정치적 상황과 강대국들 간 무역경쟁 등에 영향을 받는다.

이번 유가폭락 역시 코로나19 발발에 따른 OPEC 회원국들과 이에 포함되지 않은 ‘OPEC 플러스’ 산유국들 간 이견차이로 촉발됐다. 코로나19 발병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수요 감소가 예측돼 감산을 주장한 반면, 러시아 등은 내부사정에 의해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들의 이견차이는 자존심싸움으로 번지게 됐고, 수요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증산경쟁을 펼치면서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를 초래했다.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정유업체가 부담해야 할 원가가 줄어들 게 돼 표면적으로 이익을 취할 것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유업계는 앞서 비축한 원유를 정제해 판매하는 업체들이다. 국제유가가 줄어들면서 자연히 판매가격도 감소하게 되는데, 비쌀 때 구매해 저렴할 때 팔기 때문에 막대한 손실을 기록하게 된다.

이 때문에 각 정유사들은 예측이 어려운 유가폭락에 맞서 이익률을 보전할 수 있는 비(非)정유사업에 힘을 쏟아왔다. SK이노베이션이 대표적이다. SK이노베이션은 SK그룹의 에너지·석유사업을 맡고 있는 중간지주사격 회사다. 2011년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과 산하 5개 계열사로 재편했다. 석유사업은 SK에너지가 담당한다.

사명에서 드러나듯 단순히 정유사업뿐 아니라 화학사업(SK종합화학·SK인천석유화학)·윤활유사업(SK루브리컨츠) 등을 영위 중이다. 자체적으로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힘을 쏟고 있으며, 지난해 6번째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을 통해 소재사업으로의 확장도 꾀하고 있다. 비정유 사업에 힘을 쏟았지만 올 1분기 대규모 적자를 피해갈 순 없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1분기에만 1조775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창사이래 최악의 성적표다. 적자로 전환한 영업이익의 경우 전년동기 대비 2조1033억원 감소한 수치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글로벌 시장점유율 7위에 랭크되는 등 상당한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정유업에서 촉발된 적자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사업의 경우 ‘포스트 반도체’로 분류될 정도로 잠재력이 큰 사업이지만, 현재는 선제적 투자를 바탕으로 점유율을 높여 생존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시점”이라며 “수년 내 실익이 본격화 될 것으로 점쳐지지만 정유업에 버금가는, 혹은 이번과 같은 정유업에서 발생한 적자를 보전할만큼의 이익을 내기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평했다.

이어 그는 “SK이노베이션 역시 정유업이 근간이 됐지만 차별화 된 행보를 보인 곳”이라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전기차 배터리라는 신사업 분야로 확장했지만, 다른 기업들의 경우 석유화학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존주유소를 활용하는데 그치는 게 현실”이라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정유업계는 원유수입을 바탕으로 석유화학사업을 동시에 수행한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를 비롯해 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등 역시 최근 수년 새 해당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5조원을 투입한 복합석유화학시설(RUC/ODC) 가동에 돌입했다. 현대오일뱅크도 2600억원을 투자해 석유화학 공장 증설에 나선 바 있다.

업체들 모두 추가투자에 대한 계획도 수립한 상태다. 문제는 석유화학업계 역시 정유업계 못지않게 국제유가에 상당히 흔들린다는 점이다. 복수의 업계 전문가들도 외부요인에 따라 예측 불가능한 적자를 막아내기에 적당하지 않은 사업이라 입을 모았다.

전기차 시대에 앞서 휘발유·경유 등의 판매에만 국한됐던 주유소를 전기차충전소와 각종 편의시설 등을 더한 복합주유소로 탈바꿈 시키는 사업에도 매진 중이다. 내연차·전기차 등 구동방식과 관계없이 주유·충전이 가능하게 하고 편의점·카페·정비소·빨래방 등 다양한 업종과의 접목을 통해 ‘토털 에너지 서비스 스테이션’으로 점진적 변화를 이끄는 중이다. 다만, 해당 사업이 이익을 내더라도 정유업 적자보전이 가능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유업이 각 업체마다 중요한 캐시카우며, 막대한 매출과 상당한 이익이 수반되는 사업임에는 틀림없다”면서 “정유업이 지닌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에 다른 비정유 사업만으로는 역부족인 게 현실”이라 지적했다. 이어 그는 “각 사 자체적으로 실시 중인 국제유가 전망에 대한 예측기술을 키워 정유업 자체에서 발생할 손실을 최대한 줄이면서, 비정유사업을 통한 이익 실현에 최선을 다하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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