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주도로 ‘비대면 의료’ 추진 공식화···복지부도 전향적 입장 선회 시사
의료계, 전화상담 처방 중단 거론하며 강력 반발···1주간 평가 후 조치 결정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올 초부터 확산된 코로나19의 여파로 전화상담과 처방 등이 진행되자 정부가 이를 계기로 원격의료 추진 움직임을 공식화하고 있다. 반면 의료계는 정부 방침이 일부 확인되자 전화상담과 처방 중단을 거론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는 향후 전화상담과 처방 상황을 보고 투쟁 조치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19일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그동안 원격의료는 의료계 내에서 언급조차 금기시됐던 사안이다. 정부는 지난 2013년 원격의료 허용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반발한 의료계는 같은 해 12월 여의도공원에서 집회를 갖고 원격의료 반대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한 바 있다.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의료계 움직임은 이듬해에도 이어져 지난 2014년 3월 의료계 총파업을 유발시켰다.   

이처럼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은 의료계 반대에 부딪혔지만,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의료계 일부와 국민 의식도 변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결정적으로 정부가 원격의료를 추진하게 된 것은 코로나19의 여파다. 지난 1월 하순 발발한 코로나19 확산세가 강해지자 정부가 2월 24일부터 발열 등 감기 외 모든 질환에서 의료기관이 환자를 전화상담·진료하고 처방전을 발행, 약국에서 조제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이후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은 급속하게 진행됐다. 정부는 지난 7일 한국판 뉴딜 정책을 발표하며 보건소 모바일 헬스케어와 화상연계 방문건강관리 등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의료와 교육, 유통 등 비대면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했다.

특히 김연명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비서관은 지난 13일 21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혁신포럼에서 “과거 원격의료에 부정적이었지만 최근 긍정 검토 중”이라면서 “원격의료가 소규모 병원을 어렵게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코로나 사태에서 해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언급해 사실상 추진 의사를 공식화했다.

단, 정부는 최근 원격의료 대신 ‘비대면 의료’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비대면 의료’는 환자가 다중이용시설인 병원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전화나 온라인 디바이스 등으로 진료·처방하는 개념이다. 원격의료보다 상위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도 ‘비대면 의료’에 대해서는 전향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와 충분한 협의를 가져 비대면 의료를 논의하고 (제도화가) 필요하면 국회에서 논의도 검토하겠다”며 “현재도 2주에 1번씩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등 유관단체들과 모임을 갖는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강립 복지부 차관은 지난 15일 브리핑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차원에서 본격적인 비대면 의료의 확대나 방안을 논의한 바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유보적 입장에서 전향적 입장으로 선회를 시사해 눈길을 끌었다. 김 차관은 “복지부 입장에서는 국민 안전이 최우선되면서도 의료 이용에 있어서 사각지대 해소, 현재 의료체계 효율성과 합리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정부 움직임에 의료계는 강력 반발했다. 의료계 반발은 지난 13일 김연명 수석의 발언이 알려진 후 현재 진행형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당초 지난 7일 한국판 뉴딜 정책이 발표됐을 당시에도 원격의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있었다”라며 “하지만 당시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브리핑에서 (한국판 뉴딜 정책이) 원격의료 제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것을 순진하게 믿었다”고 토로했다.

결국 의협은 지난 18일 원격의료를 추진하는 정부를 비판하며 전화상담과 처방의 중단을 회원들에게 요청했다. 의협은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를 빌미로 원격의료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의사들 등 뒤에 비수를 꽂는 파렴치한 배신 행위”라며 “헌신하는 의사들에게 충분한 지원은 하지 못할망정 의료계와 상의 없이 (원격의료를) 도입하려 한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의협 집행부는 “국민을 위한 선의로 일부에서 시행되고 있는 전화 상담이 비대면-원격의료의 빌미로 정부에 의해 악용 당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에 대한 협회 투쟁에 동참해 달라”고 회원들에게 부탁했다. 의협은 “18일 권고 이후부터 향후 1주일 간 권고 사항 이행 정도를 평가한 뒤, 전화상담과 처방의 완전한 중단, 나아가 비대면, 원격의료 저지를 위한 조치를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혀 강경투쟁을 예고했다.

의협 관계자는 “지난 2014년에도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에 반대했지만 정책에 대한 회원들의 문제의식이나 거부감이 바뀌지 않아 협회 입장은 당시와 동일하다”며 “회원들 중지를 모아 원격의료 저지 조치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평상시라면 몰라도 코로나19에 의료계와 국민들이 힘을 합쳐 대응한 이 시점에서 전화상담 결과만 분석해 원격의료를 추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향후 의료계 투쟁은 과거 어느 시점보다 수위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정부와 의료계가 원격의료 추진을 놓고 전면 대립한다면 전반적 의료시스템이 흔들리는 등 향후 예상하지 못한 사태도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전격적으로 원격의료 제도화를 추진하거나 최소한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을 확대하며 의료계를 압박할 가능성도 예상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가 원격의료를 추진하면 의료계가 반발하니까 비대면 의료라는 용어로 여러 사업을 개시할 것으로 보인다”며 “시점도 좋지 않고 더 많은 국민 동의를 구해야 원격의료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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