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LG전자 ‘윗선’ 수사 불가피···범죄 증명하려면 여러 요건 충족해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지능범죄수사대 / 사진=연합뉴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지능범죄수사대 / 사진=연합뉴스

LG전자가 받고 있는 채용비리 의혹은 결국 ‘윗선’의 위계에 의한 지시 여부와 민간기업의 ‘채용 재량권’에 대한 쟁점으로 귀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1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LG전자의 지난 2013년~2015년 채용비리 사건을 수사 중이다. 경찰은 LG전자가 자격조건이 부족한 지원자들을 채용한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부정채용 사건에서 적용가능 한 죄명으로는 형법상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 강요죄, 남녀고용평등법위반 등 혐의가 있다. 사안에 따라서는 뇌물공여·수수죄, 배임증·수죄죄나 특별법상 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위반죄, 근로기준법위반죄 직업안정법위반죄 등도 수사기관 실무상 적용가능하다.

이중 특히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는 대부분 공·사기업의 채용비리 사건에서 널리 적용됐다. 기관장이나 기업 오너가 위계를 통해 인사부장 등 인사실무자의 인사업무를 방해한 경우다.

경찰이 구체적인 혐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수사가 불가피하게 ‘윗선’으로 옮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업무를 위계로 방해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타인의 업무를 ▲위계로 상대방에 대해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켜 ▲방해해야 구성요건 해당성이 성립한다고 본다. 서류전형에 불합격 대상인 사람이 공범 등 청탁자의 개입과 윗선의 위계로 합격하고, 면접시험 면접관의 오인·착각·부지로 최종합격하는 식이다.

과거 판례들을 보면 대부분 ‘채용업무가 타인의 업무인지’ ‘점수조작행위를 한 직원들과 기관장 등이 그와 같은 사실을 모두 알고 있어서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킨 것이 없어 위계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타인의 업무와 관련된 첫 번째 쟁점에 대해 대법원은 ‘신규직원 채용권한이 있는 윗선이 업무 담당자에게 지시해 상호 공모, 또는 양해해서 시험성적조작 등의 부정한 행위를 했다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윗선과 업무담당자가 짠 경우 위계의 ‘상대방(타인)’이 없어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과거 채용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함영주 하나은행장의 사례에서도 이 같은 방어 논리가 사용됐다. 함 행장의 변호인은 검사가 기소한 업무방해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상대방(타인)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어느 채용담당자의 어떤 업무를 방해했는지 불분명하다는 주장이었다.

LG전자에 대한 의혹처럼 민간기업 채용비리의 경우 범죄의 증명은 더 까다로울 수 있다. 사기업의 채용의 자유나 재량권이라는 견고한 방패를 뚫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를 이유로 명백해 보이는 점수조작행위도 채용관련 권한이 있는 윗선이 지시했다면 처벌되지 않는 법적 구조를 갖고 있다. 법원은 윗선이 시험을 조작해서 뽑든 임의대로 뽑든 채용의 자유 내에서 이뤄지는 것이라 본다.

함 회장의 변호인도 과거 재판과정에서 “사기업은 은행의 채용업무는 특수성과 자율성을 가진다”며 “정량화된 점수 외에도 인사 담당자가 자율적으로 인재를 채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유죄가 인정된 사례들도 상당하다. 은행권의 채용비리 사례를 살펴보면 박인규 전 대구은행장은 업무방해와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6월을 확정 받았다.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성세환 전 BNK부산은행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등도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KT채용비리로 기소된 이석채 전 회장에게 징역 1년은 선고한 1심 판단은 채용재량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례다. 1심은 대표이사의 재량권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대표이사라고 해도 아무런 제한 없이 (채용업무에) 간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KT 대표이사가 행사할 수 있는 채용 재량권의 범위가 무한정 허용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기업수사에 정통한 한 경찰 관계자는 “사기업이라도 사규에 따른 채용원칙이 있고, 위력이나 위계에 의해서 이 원칙과 절차가 위반돼 면접점수가 바뀌었다든지 하면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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