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상황 오자 시스템 미비 드러나
투자자 보호 위해 한계 상황 철저히 준비해야

금융시장에 미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는 시장 예상보다 강했다. 국내외 증시뿐만 아니라 글로벌 원유 시장에 영향을 미치면서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일들이 터져 나왔다. 그 중에서도 마이너스 원유 선물 가격은 압권이었다. 코로나19로 원유 수요가 급감하면서 판매자가 웃돈을 얹어 팔아야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웃지 못 할 상황은 국내에서도 벌어졌다. 국제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지난달 20일 키움증권 HTS에서 거래가 되지 않는 문제가 나타났다. HTS가 원유의 마이너스 값을 인식하지 못해 매매가 강제로 중단되면서 투자자들의 피해가 발생했다. 투자자 입장에선 웃돈을 줘서라도 청산을 하고 싶었지만 하염없이 내려가는 호가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 마이너스 유가에 놀란 삼성자산운용이 투자자 보호라는 이유로 ‘KODEX WTI 원유선물(H)’ 상장지수펀드(ETF)의 구성종목을 사전 고지없이 바꿔버린 것이다. 이 ETF는 지난달 22일만 하더라도 6월물 위주였지만 당시 원유 6월물이 장중 배럴당 6달러까지 급락하자 7월물, 8월물, 9월물로 분산시켰다. 공교롭게도 23일 6월물이 급반등했는데 투자자들은 그 상승분을 전부 취하지는 못했다.

이들 사례 모두 투자자들이 법적 소송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3일 간격으로 발생한 이슈에 두 건의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키움증권의 경우 현재 집단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이 착수금을 받고 소송을 준비하고 있고, 삼성자산운용 원유 ETF 투자자들은 이미 지난달 27일에 이어 이달 14일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법적인 공방을 떠나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하는 이들의 준비와 대응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결과적으로 키움증권은 거래 시스템 관리의 부실을 드러냈다. 특히나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 청산소(CME Clearing)가 5일 전부터 에너지 선물 계약이 마이너스 또는 제로 거래가격으로 상장될 수 있음을 예고하기까지 했다. 다른 증권사의 한 원유 트레이더는 “관련 종사자라면 웬만해선 해당 공지를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삼성자산운용의 ETF 구성종목 변경 역시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미국 최대 원유 ETF인 USO의 경우 삼성자산운용 보다 앞서서 사전 공지를 통해 월물 교체를 예고했다. USO의 월물 교체 역시 소송을 피하진 못했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삼성자산운용이 USO의 움직임을 통해 22일 6월물 급락이 나오기 전부터 사전 고지하고 대응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주장이 가능하다. 삼성자산운용 측은 선행매매 방지를 이유로 들고 있는 상태다.

결국 원유의 급격한 변동성은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금융투자사들의 부족함을 드러냈다. 투자에서 주로 인용되는 ‘수영장에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격언을 이번 사례에도 적용할 수 있을 듯하다. 한계의 상황이 오니 그동안의 준비와 대응 능력이 어땠는지가 드러난 것이다.

가뜩이나 국내 금융투자사들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에서 이러한 상황이 연속적으로 나왔다는 점이 안타깝다. 특히 해당 서비스와 상품을 이용했던 투자자는 다른 투자자 대비 적극적인 투자자들이다. 법적 분쟁의 결과와 상관없이 이들의 이탈은 해당 금융투자사에도 결코 유익하지 않다. 사후약방문이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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