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체계·자구 심사 기능, 여야 간 신경전 ‘도구’로 전락
법조인 출신 의원 20대 49명·21대 46명···소관 상임위서 심사 가능해
‘권력투쟁’을 위한 여야 갈등 반복···객관·상식적 차원에서 결론 도출해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권한 축소 문제를 둔 논란이 재점화 되고 있다. 여야가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 상임위원회 구성 논의를 시작하면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이른바 ‘게이트키퍼’ 역할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국회법 제86조 1항 ‘위원회에서 법률안의 심사를 마치거나 입안을 하였을 때에는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하여 체계와 자구에 대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조항이다. 모든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후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친 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는 것이다.

해당 조항이 만들어진 배경은 국회법이 처음 제정될 당시 법안을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법조인, 법학자 등으로 법제사법위원회를 구성해 다른 법들과의 상충 여부 등을 심사토록 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법사위의 권한은 다른 방향으로 사용됐다. 국회 내 여야 간 신경전의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관례적으로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은 야당이 가져갔고, 야당은 여당과 갈등이 있을 경우 종종 체계·자구 심사를 이유로 여당의 법안을 고의적으로 지연시키곤 했다. 심지어는 일부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이미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넘어온 법안의 내용을 수정할 것을 공공연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행위는 야당인 정당 모두에서 관측됐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법제사법위원회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현재의 법제사법위원회는 ‘상임위원회 위의 상임위원회’로 마치 미국의 상원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여야의 ‘갈등정국’이 끝나면 함께 수그러들었고, 논의에는 진전이 없었다. 현재도 문제제기는 되고 있지만 20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야당인 미래통합당에서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도 관측돼 전철을 밟게 될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통합당이 법제사법위원회 권한 축소를 반대하며 내세우는 근거는 ‘위헌 법률 우려’다. 법률안에 대한 체계·자구 심사 기능이 없어지면, 법안 간 모순, 불명확한 법조문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사실 ‘기우’(杞憂)에 가깝다. 20대 국회에서는 총 49명의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이 활동했고, 지난 4·15총선에서 46명의 법조인이 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18개 상임위원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포함)의 법안 논의 과정에서 체계·자구 심사 등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국회 입법조사처, 전문위원실 등을 통해 법안에 대한 체계·자구 심사 등을 촘촘히 실시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현재도 상당수의 국회의원은 법안을 발의하기 전 입법조사처, 전문위원실 등에 법률적 검토를 요청하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권한 축소 논란의 본질은 체계·자구 심사 문제가 아니라 여야 간 권력싸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약 보름 뒤면 21대 국회가 시작된다. 20대 국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을 거치며 여야 간 갈등으로 점철된 모습을 보였다.

국회는 민의가 모이는 입법기관인 만큼 서로 간의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그 속에서 논의, 토론, 설득 등을 통해 접점을 찾기 위해 구성된 기관이다. 또한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대변자로서의 의무도 있다.

‘국민의 뜻’은 정당 간 ‘권력투쟁’을 위해 자잘한 갈등을 이어가는 모습은 분명히 아닌 듯하다. 법제사법위원회 권한 축소 문제만 해도 여야 관계는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인 만큼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으로 접근해 결론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서로의 주장만 반복하며 논의 자체가 지지부진하고, 결론 없이 마무리해 또다시 지난한 논쟁을 되풀이하는 모습도 개선돼야 할 것이다. 새로운 국회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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