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길어져도 대출 관리 못 하는 분위기 있어
선제적 리스크 관리가 대출 지원만큼 중요한 상황

“이 사태(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은 금융 산업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은행을 취재한 네덜란드 기자 요리스 라위언데이크가 자신의 책 ‘상어와 헤엄치기’에 쓴 한 대목이다. 위 대목은 쉽게 말하자면 금융권의 어떤 사람도 2008년 금융위기를 위기라고 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다소 과장이 섞인 평가이다. 그런데 요즘 금융권을 바라보는 일반적 시각을 보면 비슷한 불안을 지울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은행 리스크 경고를 이야기해도 ‘설마’라는 단어로 다들 안도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하나같이 은행의 리스크 관리보다 대출 지원을 우선시하는 것 같다. 다소 과장해 평가하자면 은행의 리스크 관리는 은행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좋은 예가 최근의 신한은행 모습이다. 신한은행은 아파트 외 주택에 대한 전세자금대출 판매를 일부 중단한다고 했다가 이를 철회했다. 이를 두고 서민들의 자금 확보를 어렵게 한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고 신한은행도 우려의 목소리를 받아들인다며 계획을 잠정 보류했다. 하지만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대출 속도를 줄이겠다는 은행의 결정이 비난받을 만한 일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단순히 ‘서민이 이용하는 대출’을 줄였다는 것에 비판 여론이 커진 것이라면 은행으로선 “시중은행으로서 리스크 관리를 했다”는 의미에서 이번 건도 서민을 위한 대책으로 충분한 해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전세자금대출 중 아파트 외 신규 전세대출 취급 비중이 19%에서 22%로 증가했다. 이대로 놔둔다면 전세대출 규모는 무분별하게 커질 수 있다. 실제로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3월 말 전세자금대출은 전달보다 2조2000억원 늘었고 2월 말에도 전달 대비 2조1000억원 증가했다. 전세자금대출이 두 달 연속 2조원씩 늘어난 사례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은행이 걱정하는 것은 대출 연체율 증가다. 아직까진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이 1%를 넘지 않아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주시하지 않을 만큼 상황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국내외 경기 하강 분위기가 커지면 은행으로선 이를 지켜만 볼 수 없다. 선제적 대출 관리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금은 꿈틀거리는 연체율을 보고도 여론의 목소리 때문에 대출 확대가 우선이라고만 강조하는 상황이다. 

은행 사람들을 만나면 이 말을 자주 듣는다. “은행은 돈을 벌어도 욕먹고, 돈을 못 벌어도 욕먹는다.” 이제는 코로나19 때문에 대출을 줄여도 욕먹고, 리스크 관리를 못해도 욕먹을 입장이 됐다. 금융은 여론에 휘둘릴 산업이 아니다. 리스크 관리는 못 꺼낼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은연중에 드는 ‘은행은 대마불사’라는 생각은 심각한 오해다. 은행은 언제든 휘청할 수 있다. 그만큼 신중하게 운영돼야 한다. 여신 건전성 관리는 현재의 자금 공급 확대와 함께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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