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에도 소득 감소·회사 눈치로 쉬지 못해···코로나19 확산 가능성 높여
소득 보전하면서 쉴 수 있는 상병수당 도입 제기···정부는 1조원 규모 재원 고민
전문가 “예상수입액 아닌 ‘사후정산제’로 바꾸면 국고지원 의무비율 지켜져”

지난 12일 오전 서울 강남역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12일 오전 서울 강남역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등 질병으로 아프면 소득을 보전하면서 쉴 수 있는 상병수당 도입을 위해서는 재원이 관건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법적으로 명시된 건강보험 20% 지원 의무를 지키면 상병수당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정부는 국민들에게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라는 생활방역 행동 수칙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유급휴가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보험의 요양급여와 휴업급여가 있지만 이는 업무상 질병에만 해당하기에 대상이 매우 제한적이다. 또한 직장인들은 회사 눈치도 보인다. 자영업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질병으로 일을 멈추면 수입이 끊긴다.

최근 개인방역 5대 행동수칙에 대한 국민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1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가 “아프면 3∼4일 집에서 쉬기가 개인, 사회·구조적으로 실천이 가장 어려운 수칙이다”고 답했다.

특히 코로나19 등 질병 가능성이 있는데도 수입이 끊기고 회사에서 유급휴가를 사용할 수 없어 일터에 갈 경우 이동 과정과 직장에서 타인과 접촉이 늘어 감염병을 확산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전문가들과 시민사회는 건강보험을 통해 아프면 소득을 보전하면서 쉴 수 있는 상병수당을 도입해야 한다고 12일 주장했다. 상병수당은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미국과 한국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나라가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 국가들은 질병으로 일을 못하는 경우 건강보험에 따른 상병수당으로 하루 수입액의 50~70% 정도 보전한다.

한국도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에 대통령령으로 상병수당을 부가급여로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즉 상병수당 도입 자체는 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다.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만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 상병수당 제도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상병수당 도입을 망설이는 것은 재원 때문이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은 지난 4일 브리핑에서 상병수당 도입과 관련해 “이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경제적인 부담, 재정적인 소요가 매우 큰 그런 사안이라서 적지 않은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상병수당 재원 1조원···“정부 건강보험 20% 법적지원 의무 지키면 해결”

상병수당 도입 재원은 1조원 가량으로 예상된다. 당시 이기일 중앙사고수습본부 의료지원반장은 이와 관련해 “작게는 8000억원, 크게는 1조7000억 정도의 재원이 소요되기에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될 것”이라고 했다.

시민사회는 상병수당 도입 재원에 대해 정부가 법적으로 명시된 건강보험 20% 지원 의무를 지키면 상병수당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민건강보험법 등에 따르면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20%를 국고지원해야 한다. 2007년 국민건강보험법 108조에 ‘국가는 해당연도 건강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4%를 국고에서 공단에 지원한다’고 명시됐다. 또 국민건강증진법 부칙 2조에는 당해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6%를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하도록 했다. 이렇게 합쳐 건강보험 재정 20%를 정부는 지원할 법적 의무가 있다.

그러나 역대 정부가 20% 지원 의무를 지킨 적이 없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시민단체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16.4%, 박근혜 정부 15.4%, 문재인 정부 13.4%를 지급하고 있다.

정부가 법적 지원 비율을 지키지 않는 것은 관련 법에 붙은 ‘예상수입액’과 ‘상한선’ 등 단서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는 ‘예상수입액’의 14% 비율로 지원 기준을 정하고 있다. 이에 실제수입과 차이가 생긴다. 기재부가 예상수입액 전망 과정에서 과소편성을 해오고 있기에 14% 지원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민건강증진기금을 통한 6% 지원 의무의 경우도 ‘그 지원금액은 당해연도 담배부담금 예상수입액의 65%를 넘을 수 없다는’ 단서가 있다. 이에 6% 지원 의무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시민사회와 일부 정치권은 이러한 단서 조항들에 대해 사후정산제로 바꾸는 방식 등의 개정을 통해 국고지원 비율 20%를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사후정산제’로 바꾸면 국고지원 비율 준수"

이상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무국장은 “건강보험 예상수입액이라는 기준 때문에 늘 기재부에서 과소편성해왔다. 이를 당해 결산하고 다음해에 20%를 맞춰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꾸면 된다”며 “이 경우 1조원 규모의 상병수당 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사후정산제도로 관련 제도를 바꾸면 건강보험 국고지원 비율을 지킬 수 있다”며 “이는 결산을 해서 법적 지원율에 미달한 차액을 다음해 예산에 반영해 추가 지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법 개정은 국회 처리가 필요하다. 아프면 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상병수당 도입에 대한 국민 여론과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아프면 소득을 보전하면서 쉴 수 있도록 하는 상병수당 도입에 대한 국민적 수용이 높아졌다”며 “대부분의 주요 국가들도 이미 상병수당 제도를 도입했다. 올해 안에 우리도 이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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