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 책임소재·회계사기 의혹 침묵하거나 최소화···법적 책임 종료된 사안만 추상적 사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서초동 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 전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서초동 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 전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과문에는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불법행위의 구체적인 내용과 책임 소재,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된 삼성바이오(삼바) 회계사기 의혹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

법적 책임이 종료된 사안에 대해서만 사과하고, 본인이 받고 있는 범죄 의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감형을 위한 보여주기식 사과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지난 6일 오후 3시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감형 수단 논란의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요구에 따른 후속 절차다.

이날 이 부회장은 삼성 승계 문제와 대해서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를 언급했다. 승계문제와 관련해 많은 질책과 비난을 받았는데 앞으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삼성의 승계 문제는 1996년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과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사건에서 비롯됐다. 당시 편법증여 의혹으로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 경영진이 재판에 넘겨졌다. 삼성 에버랜드 건과 관련해 경영진들은 무죄를 확정받았고, 삼성SDS와 관련 유죄를 확정받은 이건희 회장은 4개월 만에 사면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안에서 이 부회장이 법적으로 책임질 일은 없었다. 당시 검찰은 편법증여 의혹과 관련해 이 부회장을 기소 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이 승계 의혹 자체가 ‘논란’이 된 점은 사과하면서도, 승계사실을 명확히 인정하거나 책임소재를 언급하지 않은 배경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승계와 관련한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라며 일부 자신의 범죄와 연관된 내용을 사과문에 담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농단 뇌물 사건은 이미 대법원에서 확정적인 결론이 난 상태이고, 파기환송심에서 양형 관련 심리만 진행 중이다.

정작 이 부회장은 사과문에서 삼바 회계사기 의혹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해당 부분 승계 의혹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 비율을 만들기 위해 삼성물산이 합병 직전 회사 가치를 떨어뜨리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바에서 분식회계를 벌였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최근 정현호 삼성전자 사장 등 사장급 간부들을 불러 조사하고 있는데 이 부회장 본인에 대한 소환조사도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의 침묵은 검찰 조사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진실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노사 문화와 관련해서도 삼성 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를 이야기를 꺼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노조와해 사건에서도 이 부회장 개인이 책임질 일은 없다. 이 사건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의 노사업무 총괄 책임자였던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등 임직원 30여명이 기소되면서 수사가 종료됐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재 불법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선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얘기가, 알맹이가 다 빠져버린 입장문이 됐다”며 “이실직고도 없었고, 법적 책임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앞으로 잘할 테니 봐줘라’ 이런 수준이어서 실망스럽고 ‘면죄부 받기 위한 과정이었구나’라는 생각만 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박상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도 시사저널e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잘못을 해서 주주들에게 어떤 피해를 줬는지 이야기를 안했는데 어떻게 사과가 되는가”라며 “진정성과 구체성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 부회장이 재구속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집행유예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인정된 횡령액은 50억원이 넘는다. 50억원 이상의 횡령 범죄는 최소 징역 5년으로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능하다. 다만 판사가 작량감경해서 형을 절반으로 줄여주면 징역 2년6월까지 형량이 낮아질 수 있고, 집행유예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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