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기술적 목표에 코로나로 부각된 공공성 강화 결합해야···새로운 사회 계약”
기후 대응 및 대규모 일자리 만들어 낼 산업 ‘그린 뉴딜’ 포함 여부 주목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 경제와 일자리를 뒷받침 할 한국판 뉴딜에 구체적으로 어떤 산업과 방향성이 담길지 주목받는다. 정부가 제시하는 비대면 산업과 디지털 산업만으로는 일자리 및 경기 대응에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기술적 목표에 코로나19로 필요성이 부각된 공공성 강화가 결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자리 창출과 국민 수요를 고려한 공공의료 및 공공보육 강화, 기후변화 대응이 중요하다는 의견들이 제시됐다.

정부는 코로나19에 따른 해고와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판 뉴딜(New Deal)을 추진하기로 했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국가 주도의 사업을 예고했다. 아직 구체적 방향은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판 뉴딜의 방향성으로 원격 의료와 교육 등 비대면 산업, 디지털 기반의 IT 프로젝트, 기존 SOC 사업에 디지털 결합 사업 등을 거론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전 부처에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한국판 뉴딜 국가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할 것을 당부하고 싶다. 우리의 강점을 살려 국내 기술과 인력을 활용한 디지털 기반의 대형 IT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검토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비대면 의료서비스나 온라인 교육 서비스 등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주목받는 분야,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시티 확산, 기존 SOC 사업에 디지털을 결합하는 사업, 디지털 경제를 위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정리하는 사업 등 다양한 프로젝트 발굴에 상상력을 발휘해 달라”고 덧붙였다. 홍남기 부총리도 지난달 29일 첫 경제중대본 회의에서 이 같은 선상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비대면 산업과 디지털 산업만으로 코로나19 이후 일자리와 국민 수요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뉴딜은 새로운 사회 계약···“기술과 공공성 강화 연결해야”

전문가들은 뉴딜이 사회를 재건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적 계약이라며 코로나19로 전 국민이 공공성 강화의 필요성을 확인한만큼 이를 위한 국책사업 시행이 중요하다고 했다.

코로나19는 공공성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켰다. 실제로 국내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했을 당시 음압병실이 부족해 집에서 병실이 나길 기다리다가 여러 명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었다. 5월이 된 지금까지 학교 개학이 미뤄지자 많은 학부모들이 돌봄과 보육의 애로를 호소했다. 정부의 긴급돌봄은 한계가 있었고 부모들은 자녀들을 친인척에 맡기거나 방치해야 했다. 마스크도 부족해 결국 정부가 생산과 판매에 일정 부분 개입하면서 해결됐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미국 대공황 당시 뉴딜은 재난으로 붕괴된 사회를 새로 재건하기 위한 이념적 지표였다”며 “코로나19 이후의 한국판 뉴딜은 공공성 강화가 기술 및 산업 발전과 연결돼야한다. 기술적인 부분이나 일부 산업 발전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판 뉴딜은 단순한 재정정책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방향성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 교수는 “원격 교육의 경우도 EBS(교육방송)와 같은 공공성의 의미가 있다. 즉 공공성 강화와 기술 발전이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한국판 뉴딜은 일자리 창출의 역할도 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에서 언급한 비대면 산업과 디지털 산업은 기기 중심의 산업이기에 대규모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이에 국민의 수요와 일자리, 공공성 강화를 연결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은 지난달 28일 성명 발표에서 “기기·설비 중심의 원격의료, 디지털 인프라와 빅데이터 등은 대표적으로 고용을 늘리지 않는 영역이다. 오히려 기계화·자동화는 의료인력 축소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나 교수는 “노인 요양, 보육, 환경, 공공주택 등 국민적 수요가 높고 공공성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 정부가 공공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며 “이러한 활동에 참여한 이들에게 최저시급과 사회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일자리를 스스로 의논해 발굴하면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돼야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한국판 뉴딜로 거론한 원격 의료에 대해 찬반 논란이 크다. 정부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의료 시스템 도입이 중요해졌다는 입장이다.

이에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은 “부족한 국공립병원 확충과 의료인력 고용 확대가 제대로 된 코로나19 뉴딜 일자리 대책이다”며 “원격의료는 안전·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 도서, 산간지역에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지역의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방문 진료체계와 응급시설을 갖춘 공공의료다”고 했다.

◇ 대규모 일자리 만들어 낼 ‘그린 뉴딜’ 주목···“일자리 20만개” 

정부가 미세먼지 등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이른 바 그린 뉴딜을 추진할 지 여부도 관심 사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의 공공투자를 통해 대규모 일자리를 만들어 낼 산업으로 그린 뉴딜을 언급했다.

정부도 한국판 뉴딜의 방향성을 세우기 위해 논의하는 상황에서 그린 뉴딜도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후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오늘은 뉴딜의 범주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말씀이 있었다. 디지털과 바이오, 플랫폼 뉴딜 이런 몇 가지 큰 범주에 대해 일부 논의가 있었고 기후변화와 관련한 그린뉴딜과 소프트뉴딜이라고 해서 문화나 이런 쪽에 대해서도 논의해 볼 수 있다는 제안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성호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에너지정책센터 연구원은 “전염병은 기후변화와 연관된 경우가 많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판 뉴딜에 그린뉴딜을 포함해야한다”며 “특히 정부는 탄소배출 절감의 단계적 목표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대규모 태양광, 풍력발전은 중앙정부 주도로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그 집행을 지자체에 맡겨야 한다”며 “재생에너지에 집중해 경제 침체에 대응해야한다”고 했다.

김병권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장은 “기후변화와 전염병을 막고, 대규모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산업은 그린 뉴딜이다”며 “비대면 산업으로 일자리 수요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린뉴딜의 구체적 추진에 대해서는 정의당과 녹색당 등이 밝힌 바 있다. 지난 2월 정의당은 ‘그린뉴딜 경제전략’을 통해 10년 안에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탄소배출을 줄이고 2050년까지 배출 제로에 도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러한 목표 아래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40%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약 2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기자동차 확대, 200만호 그린 리모델링으로 주택과 건물의 에너지 효율성 높이기 등을 구체적 방안으로 제시했다.

2019년 2월 미국 의회에 제출된 ‘그린뉴딜 결의안’도 온실가스를 제로로 줄이는 내용 등을 담았다. 특히 그린뉴딜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불평등 완화와 소외되는 노동자들에 대한 포용도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김 소장은 “그린 뉴딜을 실행하면서 새로 생기는 일자리에 대해 고용 안정성을 높이고, 기존 발전소 등에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노동자들의 실업과 재고용 등 포용을 함께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뉴딜(New Deal)은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의미한다. 1930년대 미국 루즈벨트 행정부에서 기존 경제 구조와 관행이 경제대공황을 불렀다는 인식 아래 이를 개선하기 위해 추진했다. 당시 루즈벨트 행정부는 은행개혁법, 긴급 안정책, 일자리 안정책, 농업 정책, 산업 개혁, 연방 차원의 복지 정책을 추진했다. 노동 조합 지원책, 공공사업진흥국(WPA)의 안정 프로그램, 사회보장법, 소작인과 농업 분야의 이주 노동자 등 농민들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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