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청춘은 묵직하게 팔딱거렸다. 안효섭은 그랬다.

 

안효섭은 지금 가장 핫한 라이징 스타다. tvN 드라마 <바흐를 꿈꾸며 언제나 칸타레 2>(2015)로 데뷔한 그는, 이후 조연에서 주연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공중파 드라마의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무엇보다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2>에서 대선배 한석규를 상대로 ‘튀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무난히 잘해냈다. 그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드라마를 끝낸 소감이 어떤가요? 애초에 제가 이 작품에 합류한다는게 신기했어요. 돌담병원 식구들, 특히 한석규 선배님과 호흡한다는 것 자체가 떨리고 설레었거든요. 이 좋은 작품에 내가 함께하다니, 드라마가 끝난 지금 생각해도 벅차요. 처음엔 행여 제가 드라마에 누가 될까 봐 긴장을 많이 한 상태였어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힘들었는데 막상 시작하니 오히려 고민이 줄더라고요. 일단 시작하면 시간이 흐르잖아요. 개인적으로 ‘우진’을 연기하면서 저 역시 성장했어요.

결과적으로 꽤 잘해냈어요. 자신감을 얻은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자신감을 얻은 순간이라기보다는 ‘이제 자신감을 가져도 될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적이 있어요. 저는 항상 제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연기해요. 스스로에게 인색하고 엄한 편이에요. 주변에서 격려와 응원을 많이 해주셔서 자신감을 조금 가져볼까도 했는데, 여전히 갈 길이 멀더라고요.

조금은 어두운 천재 의사 역할이에요. 어떻게 해석했나요? 우진이 쉬운 삶을 살아온 친구는 아니기에 그가 겪은 일들을 상상하며 캐릭터를 그려나갔어요.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의사라고 믿게끔 하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8년 차 의사는 현실에선 최소 서른두 살이에요. 누군가 12년 동안 쌓아온 것을 저는 두 달 안에 해내야겠기에 완벽할 순 없지만 노력했어요. 실제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들이 어떻게 보내는지 관찰하고, 수술대라고 상상하고 고기를 자르고 꿰매는 연습을 수없이 반복했어요. 의학 용어를 일상어처럼 쓸 수 있어야 하기에 무조건 달달 외웠고요.

안효섭이기에 잘 표현한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우진은 벽이 있는 인물이에요. 세상에 대한 불신, 행복을 믿지 않는 시니컬한 성격, 자신만의 뚜렷한 선…. 저 역시 쉽게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저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자기 일만 묵묵히 해내는 모습을 잘 그려낼 수 있을것 같았어요. 고독함이라고 해야 할까요?(웃음) 외딴섬에 홀로 버려진 느낌이 저와 비슷한 부분이었어요.

우진은 ‘사부님’을 만나고 점점 마음의 문을 열어요. 실제 안효섭은 어때요? 저는 현실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에요. 낭만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죠. 정확히 어떤 계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진의 성장 과정을 연기하면서 저도 성장한 것 같아요.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했거든요. 스태프들이 저보고 초반보다 많이 밝아졌다는 말을 많이 해주셨어요.

초반에 시청자에게 “드라마를 보면서 낭만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정작 본인은 낭만을 찾았나요? 낭만을 찾았다기보다 작품 이후 낭만을 즐기고 있어요. 촬영하는 동안 잠과 밥이참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촬영이 끝난 지금 집에서 고양이랑 놀면서 먹고 자고를 반복하고 있죠. 제가 집돌이예요. 원래 정적인 편이라 집에 있으면 며칠 동안 말도 안 해요. 어쨌든저 나름의 낭만을 찾은 것 같아요.

찾고 싶은 낭만은 없어요? 찾고 싶은 낭만보다도,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생각을 좀 더 낭만적으로 해볼 순 있을 것 같아요. 예전보다 계산적이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있을 것 같아요.

유인식 감독님의 기억에 남는 디렉션이 있나요? 감독님은 정말 현명하고 인자하세요. 제겐 최고의 감독님이셨어요. 한석규 선배님과 비슷하게 늘 웃는 얼굴이시죠. 저를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게 느껴져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했어요. 감독님이 현장에서 커트하고 특유의 억양으로 “직이네!” 라고 말씀해주실 때가 있어요. 근데 그 말을 자주 하진 않으세요. 그래서 그 칭찬을 들으면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웃음)

 

“저는 현실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에요. 낭만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죠.

촬영이 끝난 지금 집에서 고양이랑 놀면서 먹고 자고를 반복하고 있죠.

제가 집돌이예요. 원래 정적인 편이라 집에 있으면 며칠 동안 말도 안 해요.”

 

 

옆에서 본 한석규는 어떤 배우인가요? 원래 팬이었는데 더짝사랑하게 됐어요. 현장에서 가장 열심히 하시고 늘 새로운 걸찾으세요. 좋은 아이디어를 후배들과 공유하려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그 모습이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오래 연기를 하진 않았지만 간혹 안주하는 선배님도 보고, 연기를 일처럼 하시는 분도 봤어요. 근데 한석규 선배님은 연기를 정말 사랑하는게 느껴져 선배님과 함께한 시간이 정말 행복했고 뜻깊었어요. 인터뷰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 진짜요.(웃음)

무서운 선배일 것 같은데 아닌가 봐요. 아버지처럼 포근하세요. 지금도 선배님을 기억할 때 웃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웃으실 때 후광이 느껴질 때도 있고요.(웃음) 제게 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독님이 한 분 더 계신 느낌이랄까요? 선배님은절 보면 지난 세월이 떠오르시나 봐요. 자신이 했던 실수나 미흡했던 점들을 제게 편하게 조언해주셨어요. 훌륭한 멘토였죠.

러브 라인 이성경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사실 처음에는 저와 결이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좀 어색했죠. 저는 갇혀 있는 사람인데 성경 씨는 적극적인 사람이었거든요.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였어요. 근데 우리의 어색함이 오히려 극 중 ‘은재’와 ‘우진’의 서사에는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서먹한 관계이기 때문에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았어요. 물론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친해졌지만요. 성경 씨는 책임감도 있고 상대를잘 챙겨주고 늘 에너지가 넘쳐요. 제겐 너무나 좋은 직장 동료였어요.(웃음)

이제 데뷔 5년 차예요. 지난 활동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모든 게다 경험과 배움이라 생각하고 무조건 달려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 작품, 미련이 남는 작품도 많지만 그 작품들이 모여 제가 만들어진 것이기에 다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낭만닥터 김사부 2>가 제 필모그래피에 어떻게 남을지는 제가 판단할 게 아니지만, 분명한 건 큰 기회이자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특히 제가 연기적으로, 또 인간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어요. 이렇게 많은 선배님과 한작품을 함께하고 긴 분량의 호흡을 맞춰본 적은 없었거든요. 선배님들이 제가 상상했던 것과 다른 연기를 하시는 걸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그걸 보는 재미가 상당했어요. 배울 게 너무 많아 학교 다니듯이 촬영했다는 느낌도 들어요.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을 작품이에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운 점은 뭘까요? 연기를 대하는 자세요. 배운 건 너무 많은데 큰 알맹이로 얘기하면 그게 제일 큰 것 같아요. 특히 한석규 선배님을 보면서 많이 느꼈는데, 장면 하나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는지 느껴져 존경스러웠어요. 순간적인 몰입도가 정말 대단하세요. 큐 사인이 나는 순간 ‘김사부’ 그 자체로 변하는 선배님을 보면서 집중도가 너무 중요하다는 걸 다시 느꼈어요. 연기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선배님들 덕분에 저역시 연기와 점점 사랑에 빠지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인기, 체감하죠? 사실 드라마를 하는 동안엔 지방에 있는 세트장에서만 지내다 보니 실감이 잘 안 났어요. 유일하게 확인할수 있는 방법이 sns더라고요. 하루가 다르게 저를 좋아하는 분이 늘어갔어요. 그리고 세트장 근처 식당에 가면 예전보다 사인도 많이 해달라고 하시고 간혹 반찬 서비스도 좀 받고요. 그래도 아직은 실감이 안 나요.

이번 작품이 차기작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한 작품에 의해 앞으로의 제 결정이 좌우되진 않을 거예요. 그동안 촬영에 집중하느라 들어온 제안을 다 확인하지 못했어요. 이번 주부터 회사와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살펴보고 고민해볼 계획이에요.

작품 고르는 기준은 뭔가요? 딱히 없어요. 모든 가능성과 마음을 열어놓고 보는데 조금 피하고 싶은 건 있어요. 외모가 부각되는 역할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캐릭터가 딱딱한 부분이 있는 것같아서요. 저는 조금 망가지고 싶고 좀 더 편안한 느낌의 연기를 하고 싶어요. 사이코패스 같은 비상한 역할도 재밌을 것 같고요.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네요.

올해도 ‘열일’할 계획인가요? 네, 저는 그러고 싶어요. 하루도 쉬지 않고 촬영하는 게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휴식은 한두 달이면 충분해요. 그 시간에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고 차기작을 준비하면될 것 같아요.

애정이 각별했던 ‘우진’에게 작별 인사 한번 해주세요. 안효섭이 우진에게요?(웃음) 우진이 형이라고 해야 하나요? “우진아. 내가 너를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지만 지금 정말 잘하고 있고, 너는 행복해질 자격이 충분해. 돌담병원에서 잘 지내고 음….” 그냥 여기까지요. 쑥스럽네요.

앞으로의 포부로 인터뷰를 마무리할까요? 한석규 선배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나요. 안주하면 그 자리에 멈추는 게 아니라 퇴보한다는 말이요. 안주하지 않고 늘꾸준히 뭔가를 찾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계속 배우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2020년 04월호

https://www.smlounge.co.kr/woman

에디터 하은정 사진 스타하우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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