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나 정책 효과보다 ‘명분’ 두고 우왕좌왕···상위 30%에게 기부 요구 시 명분마저 희미해져

하필 선거철과 겹쳤기 때문일까. 코로나19 긴급재난기본소득 논의가 산으로 가는 모습이다. 어떤 기준으로 지급하느냐를 놓고 여야, 그리고 당정청이 우왕좌왕하다가 이젠 ‘긴급지원’이라는 말도 무색하게 시간이 흘렸다.

지리한 변화과정은 생략하고 간단히 큰 틀에서 정리하면, 처음에 70%만 주겠다고 했다가 다시 100%로 논의가 되더니 이젠 소득상위 30%는 받았다가 아름답게 기부를 하라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재난지원금을 전부에게 주고, 이를 다시 기부로 유도하려는 묘안은 명분을 잡고 싶다 보니 나온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모두에게 돈을 나눠 줬다는 명분을 챙기면서 재난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으면 ‘기부’로 간주해 재정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품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묘안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지만, 여전히 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정부와 정치권이 실리나 효과보단 명분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논의가 길어지다 보니 기억에서 점점 잊혀 지나본데 정부와 정치권은 애당초 이 재난지원금을 왜 지급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재난지원금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갑자기 돈을 주려고 꺼내든 정책이 아니다. 그럴 거면 코로나19 터지기 전에 진작에 줬어야 하고, 또 하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하면 안 된다.

지금 이 시기에 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려는 이유는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경제가 죽지 않고 돌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누가 쓰느냐’보단 그냥 급하게 돈을 쓰게 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주게 된 것이 재난지원금이란 소리다. ‘명분’보단 ‘효과’에 방점을 둔 정책이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최대효과를 낼 수 있을 지만 고민해도 부족할 판이다. 그런데 여야 정치권 및 정부의 태도를 보면 여전히 명분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정책 카테고리에 있어야 할 재난지원금을 여전히 정치 카테고리에 놓고 싸우고 있다.

심지어 명분도 점점 헷갈리고 있다. 이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빠질 뻔한 소득상위 30%는 이제 ‘기부하세요’라는 권고를 듣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몇몇 공무원들은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다. 눈치 보여서 어디 받겠느냐는 것이다. 재정 등을 고려했을 때 정 모두에게 주는 게 무리이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면 차라리 돈 걱정 덜할 가능성이 높은 상위 10%나 5%를 뺐어야 하지 않나? 아니면 아예 고액 자산가들을 빼던지 말이다. 그랬다면 차라리 이해가 간다.

그런데 30%를, 그것도 건강보험료 납부 기준으로 잡았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나온 계산법인지 직장인들은 어리둥절하거나 분노하고 있다. 상위 30% 기준이 1인 가구 기준 월 수익 263만원 이상이라던데, 월 263만원 번다고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재벌이 아니다. 주변에 친한 직장인 1명만 있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 30%의 기준을 세울 때 무엇을 고려한 것인지 의문이다.

안 그래도 이 30%는 온 국민이 병원비 싸게 낼 수 있도록 건강보험 재정에 기여하고 살고 있다. 또 이 중엔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궂은일도 성실하게 해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지금은 263만원이상 벌지만 코로나19 위기로 직장이 없어질 수도 있다. 심지어 나중에 코로나19로 인한 재정공백을 채우는 것도 결국 이들 몫이 될 공산이 크다.

실리는 둘째 치고 한번 묻고 싶다. 기부든 뭐든 이런 사람들을 지급에서 배제하려고 하는 목소리가 과연 어떤 명분이 있느냐고 말이다. 지금이라도 이 재난지원금을 주려는 본 목적과 기대 효과가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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