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 정준영, 재판과 무관한 훈계···외국 기준인 준법감시위 도입과 양형반영 의사 보여 논란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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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관련 혐의 재판 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받는 범죄 혐의에 대한 법적 다툼보다는 재판부 공정성에 대한 논란만 가중되고 있다. 이 부회장에게 경영 훈계를 하고 준법감시위원회 운영을 양형에 반영할 것처럼 재판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법원이 논란을 자초한 모양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장에 대한 기피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결정에 불복해 23일 재항고했다.

형사소송법상 검사나 피고인은 불공평한 재판이 염려될 때 법관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 본안사건 재판은 진행이 중단되고, 다른 재판부가 기피 재판을 담당하게 된다. 이번 재항고 사건 판단은 대법원이 맡게 된다.

앞서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배준현 부장판사)는 특검팀이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장인 같은 법원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에 대해 낸 기피신청을 지난 17일 기각했다.

특검팀은 정 부장판사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소송지휘를 하고 있다며 불공정 재판이 우려된다고 주장했지만, 형사3부는 “(정 부장판사가) 양형 심리와 관련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객관적 사정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검의 기피신청에 대해 법원의 추가 심리가 필요해진 만큼, 지난 1월 멈춰선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도 공백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이번 공백은 법원이 자초했다는 분석이 상당하다. 이 부회장에게 재판과 관련 없는 훈계성 발언을 하고, 국내 양형기준에도 없는 준법감시위 설치와 양형반영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실제 정 부장판사는 공판과정에 “심리 기간에도 당당히 기업 총수로서 일하라” “만 51세에 이건희는 신경영을 선언했다. 이재용의 선언은 무엇이어야 하느냐” 등 훈계성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경제개혁연대는 즉시 논평을 내고 “재판장이 기업인 출신 피고인에게 경제·경영에 대한 구체적 조언과 당부를 한 것은 향후 재판의 공정성 시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정 부장판사는 또 미국 연방법원 양형 기준 8장을 근거로 준법감시기구 설치를 권고했다. 대법원이 사회적 합의를 거쳐 만든 양형 기준이 있는데도 미국의 양형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정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에게 준법감시기구 설치를 이유로 형량을 깎아주기도 해 우려를 키웠다. 이 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받았으나,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벌금 1억원으로 감형받았다.

이에 학계와 법조계를 중심으로 재판부가 언급한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이 경영자 개인이 아닌 기업에 적용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노동·시민단체들도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공판진행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기는커녕 또 다시 재벌의 범죄행위에 대해 봐주는 것 아니냐는 국민들의 우려와 분노를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직 부장판사가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도 있었다. 설민수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는 준법감시위원들이 회사 내부 정보에 직접 접근할 수 없는 한계, 위법행위 중간에 미리 파악하기 어렵다는 문제, 실질적인 견제장치 부재 등을 이유로 들었다.

특검 측은 미국 연방양형기준을 가져와 삼성 준법감시제 도입을 먼저 제안하고, 전문심리위원제도를 통해 그 실효성을 살피겠다는 계획은 이 부회장 ‘감형’을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검 관계자는 “이 부회장 사건 재판장이 삼성그룹 내 준법감시위원회 설치·운영을 제안하고 전문심리위원제도를 활용해 평가하겠다고 한 것은 미국 연방양형기준 중 보호관찰 규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보호관찰 제도는 우리나라의 집행유예 제도와 사실상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또 “양형사유로 활용이 불분명한 준법감시위 설치를 먼저 제안한 것은 환송 전 원심이 선고한 집행유예 판결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며 “대법원에서 (기피신청에 대해) 올바른 결정을 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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