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제·주상영 등 친정부 인사 합류···정부와의 소통 확대 기대
서영경, 취임사에서 “추가 정책 방안 검토” 예고···SPV 설립·헬리콥터 머니 등 거론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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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새로운 체제를 맞이함에 따라 한은의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친정부 성향으로 평가받는 인사들이 새로 금통위에 합류함에 따라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함께 활용되는 폴리시믹스(Policy Mix·정책 조합)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금통위원은 이미 취임식을 통해 추가 정책 방안 검토를 예고하기도 했다. 현재 특별목적회사(SPV) 설립을 통한 회사채 매입이 가장 실현 가능성 큰 유동성 확대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중앙은행이 통화발행권(발권력)을 강화해 시중에 자금을 직접 공급하는 ‘헬리콥터 머니’의 필요성도 점차 부각되고 있다.

◇‘文 대통령 경제교사’ 조윤제, 금통위 합류···정부·한은 협력 강화 기대

21일 한은은 서울 중구 본관에서 신임 금통위원들의 취임식을 진행했다. 전날 임기가 만료된 조동철·신인석·이일형 위원을 대신해 조윤제 전 주미대사와 서영경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원장, 주상영 건국대학교 교수가 금통위에 합류했다. 한은 최초로 연임에 성공한 고승범 위원의 새 임기도 이날부터 시작됐다. 조 위원과 서 위원의 임기는 4년, 주 위원과 고 위원의 임기는 3년이다.

금통위원 교체는 한은의 유동성 공급 확대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은이 은행 이외의 기관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한은법 80조3항, 65조4항에 따라 정부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데 친정부 인사의 합류로 소통 경로가 더욱 확대됐기 때문이다.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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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조 위원은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에서 민정수석비서관과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등을 맡고 있었다. 또한 19대 대선에서 조 위원은 문재인 후보 캠프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소장을 맡아 현 정부 경제정책 수립을 이끌었다. 때문에 조 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며 이번 정부에서도 2년 동안 주미대사를 지냈다.

조 위원은 서강대에 오랜 기간 몸담고 있지만 성장을 중시하는 ‘서강학파’에 비해서는 진보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통화정책과 관련해서는 중도파에 속하는 인물로 전해지지만 이번 코로나19 국면에서는 정부와 호흡을 맞춰 유동성 공급 방안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주 위원은 국내 대표 진보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소득 주도 성장론자’로 분류된다. 지난 2018년부터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 위원과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맡고 있는 만큼 정부와의 소통도 원활할 것으로 전망된다. 평소 통화정책에 대해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언론사 칼럼 등을 통해 재정정책과의 조화를 자주 강조하고 있다. 미국 경제학자 스탠리 피셔의 견해를 인용해 중앙은행의 긴급 재정지원을 언급하기도 했다.

서 위원은 한은 출신 인사로 사상 첫 여성 부총재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한은 출신 인사들이 전통적으로 매파적 성향을 띠는 것을 고려해볼 때 서 위원 역시 이주열 총재, 윤면식 부총재와 함께 앞으로 매파적 견해를 다수 표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번 코로나19 국면에서는 다른 신임 위원들과 뜻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서 위원은 이미 취임사에서 “앞으로도 민간에 대한 원활한 유동성 공급을 위해 추가적인 정책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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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V 설립을 통한 회사채 매입 가능성 커져···‘헬리콥터 머니’ 요구도 확대

현재 한은이 정부와 협의해 실현할 수 있는 유동성 공급 방안 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SPV 설립을 통한 회사채 매입이다. 이미 이 총재는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연준이 그랬듯이 정부 보증하에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는 것은 효과가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SPV를 통한 회사채 매입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지원 방안이다. 미국은 정부가 총지원금 10% 수준의 출자금으로 SPV를 설립하고 연준이 나머지 90%를 SPV에 대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해당 방안이 한국에서도 시행될 경우 대출로만 제한되는 기업 유동성 공급의 제도적 한계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일각에서는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돈을 찍어내 시중에 공급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필요성도 언급되고 있다. 마치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것과 같다고 해 ‘헬리콥터 머니’라고도 불리는 이 방법은 행위 주체가 중앙은행이라는 점에서 ‘재단기본소득’과 차이를 보인다.

특히 주 위원은 직접 ‘헬리콥터 머니’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한 언론 매체에 실린 칼럼에서 ‘기본저축 도입’을 주장하며 “금융위기나 디플레이션을 수반한 장기 침체같이 큰 위기가 닥칠 경우에는 한국형 양적완화의 통로로 활용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위 ‘헬리콥터 머니’를 기본계좌로 손쉽게 넣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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