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원 삭감 산정액보다 시공사가 더 많은 금액 자진삭감하는 해프닝
자료제출 등 조합 협조 필수지만 시공사 압박 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철거당시 모습 /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철거당시 모습 / 사진=연합뉴스

 

한국감정원이 시행 중인 공사비 검증제도를 검토하는 정비사업장이 늘고 있다. 공사비 검증제도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의 고질적 문제로 꼽히는 공사비 증액이 타당한지를 감정원에 의뢰해 검토하는 절차다.

정비업계에서는 시공사의 깜깜이 공사비 증액에 따른 개별 조합원의 추가분담금 증가가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 온 만큼 도입당시 크고 작은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조합원들이 관심을 보였다. 특히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조합에서는 공사비 검증을 앞두고 있는 와중에 시공사 측이 무려 3000억 원에 달하는 공사비를 자진 삭감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최근 들어 이 제도를 검토하는 사업장이 늘어나고 있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둔촌주공 재건축 시공을 맡은 시공단 측은(현대건설, 롯데건설, 대우건설, HDC현대산업개발)은 검증의뢰를 앞둔 지난해 말 7400억 원에 달하는 공사비 증액분 가운데 약 3000억 원을 낮춰주겠다며 조합에 제안했다. 이는 둔촌주공이 감정원의 공사비 검토를 앞둔 시기여서 시공단이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감정원이 서류를 제출받아 시공사의 비용산정이 합당한 지를 확인한 결과 감액권고 금액은 2900억 원으로 책정됐다. 감정원의 권고 금액보다도 시공사 측이 더 많은 금액을 자진 삭감하겠다고 선언한 코메디가 벌어진 것이다. 감정원의 평가 및 조치가 법적 효력은 없지만 시공사의 공사비 부풀리기 관행에 상당한 강제력과 압박감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서울의 주요 정비사업장에서도 감정원의 공사비 검증을 받기 위한 움직임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공사비 900억 원의 증액분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성북구 장위4구역은 감정원에 의뢰를 해 둔 상태이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강남구 개포주공4단지 조합은 최근 공사비 검증요청을 위한 조합원 의견 수렴에 나섰다. 지난 2017년 2월 조합과 시공사인 GS건설이 날인해 체결된 공사도급계약서의 공사비 대비 1378억 원이 늘어나며 총 공사비가 1조 원을 훌쩍 넘긴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소유주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더라도 1년여 기간 사이에 공사비가 8% 이상 증가했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날인은 하지 않은 상태다.

공사비 검증제도는 시공사가 쌈짓돈을 챙기는 것을 근절할 수 있다는 매우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한계도 뚜렷하다. 감정원은 조합원으로부터 공사비 변경 전·후 설계도와 지질조사서, 자재설명서, 구조·설비 공법 검토서 등을 받아 검토하는 방식인데, 통상 시공사와 조합이 결탁돼있는 경우가 많다. 즉 조합 자체가 조합원 권익을 대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조합원 다수가 검증을 원해도 조합이 서류를 제출하지 않으면 검증 절차를 원활히 거치기까지가 쉽지 않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감액권고가 법적 구속력이 없다보니 시공사가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면 법정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법적분쟁, 시공사 변경 등으로 공사기간이 더 지체될 수 있다는 점, 조합으로부터 서류를 받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 한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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