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한국 GDP 대비 공공부문 부채 비율, OECD 평균보다 크게 낮아
지금은 여태 준비해온 재정 여력 잘 쓸 때···가난한 시민들 살리고 경제 숨통 틔워야

코로나19 감염병 확산 위험으로 세계경제가 급속히 위축되는 가운데 한국경제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고용사정이 악화되면서 일용직과 특수고용 노동자, 영세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피해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대책이 어디에 집중돼야 하는지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당초 정부는 2020년 본예산을 전년도 총지출 대비 약 37조원 늘린 512.3조원으로 편성했으나 코로나19 위기 대책으로 11.7조원의 1차 추가경정예산을 더했다. 긴급재난지원 목적의 2차 추경, 3차 추경도 이어질 예정이다. 이 정부 대책은 재난 구호가 목적이므로 긴급성이 크다. 경제침체에 대응하려는 목적을 감안해도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재정총량이 늘어나는 과정에서는 항상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진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한 국가의 재정 여력은 채무 한도와 현재의 국가채무비율의 차이를 일컫는다. 채무 한도는 이론적 개념으로서, 국가채무비율이 이를 넘어서면 여러 부작용이 수반된다는 시각이 있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의 중앙과 지방 정부 채무는 국내총생산 약 1,900조원의 38%였다. 준 정부기관을 포함하고 미래 발생할 지출까지 부채로 더해 계산한 일반정부 부채는 2018년 기준 국내총생산의 40%이다. 여기에 그 밖의 공기업까지 모두 고려된 공공부문 부채는 2018년 기준 국내총생산의 57%이다. 이들 비율을 각각 D1, D2, D3라고 한다. D2는 2016년, D3는 2015년에 가장 높았다가 2018년까지 떨어졌다.

한국경제의 D1 비율은 OECD 평균 110%에 크게 못 미친다. D2 비율도 이를 발표하는 OECD 33개국 가운데 네 번째로 낮다. OECD 평균은 109%이다. 한국경제의 D3 비율도 OECD 평균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는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경제상황 악화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가령 재정 순 투입을 190조원 이상 늘리더라도 D1 비율이 여전히 50%를 넘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미 D1 비율이 100%를 넘은 나라에서 이 비율을 110%로 올리는 것보다는 부담이 덜할 것이다.

일찍이 경제학자 에브시 도마에 의해 확립된 견해에 따르면, 한 경제의 명목성장률(경제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것)이 국채이자율보다 높으면 재정은 지속가능하다. 이 조건이 충족되는 한, 통합재정수지에서 이자지급액을 뺀 기초재정수지가 적자를 지속해도 재정 불안이 문제되지 않는다. 도마 이후의 거시경제학에서는 명목성장률이 국채이자율보다 낮더라도 정부가 국가채무비율을 고려해 기초재정수지를 적절히 조정하면 재정이 지속가능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한국경제는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명목성장률이 국채이자율을 웃돌았다. 명목성장률이 1.1%,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연평균 1.5%였던 2019년 한해만 유일한 예외였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는 기초재정수지도 흑자였다. 2020년은 코로나19 위기로 명목성장률이 더 떨어지겠지만 국채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비용도 함께 떨어지는 추세이다. 일반정부 부문의 순자산도 2018년에 전년 대비 206조 원 가량 늘었다.

IMF는 한국이 국가채무비율을 채무 한도까지 203%포인트만큼 더 올릴 여지가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2019년 4월 IMF는 한국을 독일, 네덜란드와 함께 회원국 가운데 가장 재정 여력이 큰 나라로 꼽았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 역시 한국경제의 재정 여력을 241%로 발표한 바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부터 최근까지 명목성장률과 국채이자율, 기초재정수지 적자비율 평균값을 이용해 도마의 방식대로 간단하게 시산한 한국경제의 장기균형 채무비율도 200%를 넘어 현재의 D1, D2, D3와는 차이가 크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세계 각국의 정부는 재정투입을 확대하고 있다. IMF의 최근 반기 재정점검 보고서는 올해 세계 각국에서 정부 부문의 채무비율이 국내총생산의 13%포인트만큼 오르고 선진국의 경우에는 이 비율이 평균적으로 17%포인트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에 2차 추경까지 고려한 한국 정부의 재정투입 계획은 국내총생산의 1%를 조금 넘는 정도이고 그나마도 2차 추경은 기존 예산의 구조조정으로 채무 증가 없이 재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에 한국경제의 재정 여력은 세계 각국에 비해 덜 훼손될 것이다. 다만 당장 꼭 필요한 재정투입을 아끼는 만큼 취약계층의 고통이 가중되고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은 어떤지 따져볼 일이다.

경제학자 요제프 슈타인들은, 채무를 늘리지 않으려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에 나설수록 결과적으로 채무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부채의 역설’을 이야기했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도마의 통찰에도 그와 같은 문제의식이 내포되어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투입은 일차적으로는 생계의 위협에 내몰린 가난한 시민들을 살리는 것이어야 하고 더 나아가 위축되고 있는 경제의 숨통을 틔우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은 여태껏 준비해온 재정 여력을 잘 쓸 때이다. 이번에도 재정 여력을 아끼고 허리띠를 졸라맬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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