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사실 모두 유죄로 판단…선고 직전 피해자 측에서 합의서 제출
재판부 “모범 보여야 할 그룹 총수, 책무 망각…피해자 용서 등 참작”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하고 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김준기 전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하고 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김준기 전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하고 비서를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김준기(75) 전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구속기소 상태로 재판을 받아온 김 전 회장은 이날 판결로 6개월만에 석방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이준민 판사는 17일 피감독자간음·강제추행·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 전 회장의 1심 선고기일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또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과 각 5년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 진술의 신빙성이 높고,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폭로하게 된 경위가 자연스럽다”며 “피해자들이 피고인을 무고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지어내 진술했다거나 무고할 동기가 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고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양형에 대해서는 “피고인은 사회적으로 모범적인 행동을 보여야 할 그룹 총수의 지위에 있음에도 그런 책무를 망각한 채 가사도우미와 비서 등 피해자들을 수차례 추행해 죄질이 좋지 않다”며 “피고인 지시에 순종해야 하는 취약한 처지에 있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지위를 악용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또 “피해자들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했고 치료를 받는 등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미국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수사기관의 수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아 범행 후 정황도 좋지 않다”고 꼬집었다.

다만 이 판사는 김 전 회장이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를 받아 이들이 모두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동종 성폭력 범죄 전력이 없는 점, 재판 과정에서 대부분 사실관계를 인정한 점, 고령인 점 등을 양형에 유리하게 참작했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3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범행 내용과 죄질, 범행 인정 및 반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16년 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자신의 별장에서 일한 가사도우미를 성폭행·성추행하고 2017년 2부터 7월까지 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2017년 7월부터 질병 치료 차 미국에서 머물던 김 전 회장은 여비서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6개월마다 체류 기간을 연장하며 경찰 수사를 피해왔다.

그는 경찰이 여권을 무효화하고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인터폴) 적색 수배를 내리는 등 압박하자 2년 3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23일 새벽 귀국해 체포됐다.

김 전 회장은 공소사실의 사실관계는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피해자들과 연인처럼 가까운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에 대한 1심 선고는 지난 3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이날로 연기됐다. 피해자 측은 지난달 26일 합의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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