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 코로나19 감염·사망자 세계최고···설상가상 유가폭락, 셰일산업 붕괴 조짐
3.5조 투자한 롯데케미칼 수익성 급락···전기차 수요도 줄어들며 배터리도 시름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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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환대받았던 투자를 감행한 화학사들의 속앓이가 심화되는 양상이다. 방대한 내수시장을 자랑하는 미국 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환자가 급증하며 경기위축이 심화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국제유가 폭락으로 특수를 기대했던 셰일산업마저 휘청이며, 수요 감소 및 수익성 부진 등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미국의 코로나19 누계 감염자 수는 63만6350명, 사망자 수도 2만8326명을 기록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감염·사망자 수를 보였다. 불안감이 확대되고 전반적인 수요가 줄어들면서 주요 경제지표들이 줄줄이 하락 중이다. 세계 최대 원유 소비·수입국인 미국을 수출국으로 변모시킨 셰일산업들이 국제유가 폭락으로 도산하는 상황이다.

셰일산업은 기존 원유보다 채굴단가를 낮춰 경쟁력을 확보한 탓에, 고유가 시대에 경쟁력을 지닌 사업모델로 추앙받았다. 문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원유가격이 급락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에 이어 원유소비 2위던 중국에서 전염병이 확산되다 보니 불확실성이 팽배해지고, 바이러스 확산에 따라 수요가 감소해 원유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정비용을 감내할 수 없던 기업들의 파산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뿐 아니라 석유수출국기구(OPEC) 수장 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비(非) OPEC 가입국 중 가장 많은 생산량을 자랑하는 러시아 등이 감산합의에 실패하고, 오히려 증산경쟁을 펼치면서 유가는 더욱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올 초 배럴 당 60달러를 웃돌던 원유가는 현재 20달러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미국의 중재로 감산합의가 이뤄졌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재고량이 높아지고 수요회복이 더뎌 추가적인 유가하락을 막지 못했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선 까닭도 셰일산업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기조 속에서 우리 기업들도 상당한 피해를 맛봤다. 현재 SK그룹은 SK㈜와 SK이노베이션 등을 통해 5700여억원을 투자했다. E1도 800억원 상당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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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금액을 쏟은 곳은 롯데그룹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5월 3조5000억원을 들여 ‘셰일의 중심지’ 루이지애나 레이크찰스에 에틸렌 공장을 준공했다. 자국 내 일자리 창출로 트럼프 대통령의 환대를 받은 투자로 유명하다. 현지서 셰일원유를 공급받아 제품을 생산해, 기존 나프타 제조방식대비 30~40% 저렴하게 생산하겠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 공장이다.

유가가 폭락하며 이곳 공장의 마진 역시 약화됐다. 더불어 당초 세계 최고 수요국인 북미시장 공략의 거점을 마련하겠다는 의의가 컸던 투자였으나, 코로나19로 미국의 수요가 급감하면서 더욱 고심이 커지게 됐다. 현재 미국은 셰일업체들의 도산으로 직장을 잃은 이들이 대출금 상환에 고심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셰일위기가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음이 경계되는 실정이다.

화학업체들의 차세대 먹거리 전기차 배터리도 같은 이유로 고심이 깊다. 전체적인 자동차 수요가 줄어듦에 따라 투자에 나선 기업들의 이익금 회수도 더뎌질 쳐지에 놓였다. 북미시장은 유럽·중국 등과 더불어 글로벌 3대 전기차 시장으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이들 세 지역은 코로나19에 따른 피해가 가장 극심한 곳들이다.

북미시장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업체로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등이 대표적이다. LG화학은 2조원을 투입해 지난 2012년 미시간주 홀란드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이후 지속적인 추가투자를 바탕으로 초기보다 4배 이상의 생산량을 자랑한다. 지난해에는 GM과 배터리 합작사를 세우기로 했다. 2조원의 출자금을 공동으로 부담한 양사는 7000억원의 추가 투입을 합의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의 북미 배터리 생산라인은 현재 건립 중이다. 1조9000억원을 투입한 제1공장은 2022년 본 가동을 앞두고 있다. 최근에는 인근 부지를 매입해 2공장 건립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조지아주가 유치한 해외투자 사례로는 역대 최고액인데, 트럼프 대통령도 상당한 관심을 표한 바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수요중심인 미국에서 코로나19와 같은 높은 전염력을 지닌 바이러스 출연과 이 같은 사태의 장기화는 전기차 그리고 전기차배터리 업계 전반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로선 바이러스 확산방지를 위해 현지 정부에 적극 협조하고, 코로나19 확산이 멈춘 이후의 시장을 대비하는 게 현명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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