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위한 일에 시간을 쏟으며 바쁘게 달려온 김제인 씨.
새롭게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오직 나만을 위해 하루를 보내며한 템포 쉬어가려 한다.

쉼표를 찍다

김제인 씨는 반려묘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열 살 금동이, 여섯살 레이, 다섯 살 미르. 지금은 수납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그녀가 손수 제작한 캣 타워가 오른편에 자리 잡고 있다. 그녀와 고양이 미르가 앉아 있는 소파는 스물한 살 때 구매해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는 제품으로 흠집을 방지하고자 천을 덮어놓았다. 거실은 지나온 10년 동안의 세월을 한눈에 보여준다. 공간을 가득 채운 가구와 소품, 식물은 모두 가게를 정리하면서 버리지 못했던 것들이기 때문. 독서 용도로 주로 사용하는 캠핑 체어 역시 그동안 자신의 카페에서 사용했던 것이다. / 사진=김덕창

 

김제인 씨는 인테리어, 목공, 도예, 요리 등 다양한 분야에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녀는 최근 10년간 요리와 깊숙이 연관된 삶을 살아왔다. 도예를 전공한 그녀는 우연히 지인에게 대접한 요리가 큰 호응을 얻은 것을 계기로 스물아홉 살, 생각지도 않았던 가게 ‘소 소한술집’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10년 동안 쉬지 않고 연남동과 서교동 일대에서 요식업에 전념했다. 가게를 운영하며 즐거웠던 기억도 많지만 그만큼 심적으로 힘들었다는 김제인 씨. 결과적으로 모든 게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자신이 설계부터 인테리어까지 손수 맡아 아래층은 가게로, 위층은 주거 공간으로 사용했던 건물을 내놓기로 결심했다. 갑작스레 정든 홍대 부근을 떠나기 보다는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으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작년 11 월 지금의 집을 만났다. 연남동 번화가에 자리 잡았던 이전과는 달리 편안히 주변을 산책할 수 있는 환경으로, 오로지 나를 위한 일들에 집중 하며 조용히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이곳이 그녀는 마음에 든다.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다

1 주방에 자리한 스메그 냉장고는 가게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다이닝 테이블은 키엔호에서 발견한 오래된 목재를 활용해 직접 제작했다. 오른쪽 캐비닛은 2013년 구매해 지금까지도 사용하는 제품으로 오투 가구. / 사진=김덕창
2. 조명이 자리한 오른편 문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장식 용도라고. 실제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었으나 그녀가 이사 오기 전 주방과 테라스로 이어지는 벽은 철거한 상태 였다. 3.주방과 테라스 사이 공간을 활용해 그녀만의 작은 서재를 완성했다. 천을 활용해 서재와 주방 사이 구역을 정리했다. 빈티지한 목재의 질감이 매력적인 책상은 키엔호 제품. 커튼을 펼치면 캠핑 의자가 놓인 작은 테라스를 만날 수 있다./ 사진=김덕창

 

 

4 사이드테이블은 오투 가구. 그녀는 조명과 식물을 참 좋아한다./사진=김덕창

가게를 정리하고 이사를 준비하면서 대부분의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가져왔다. 평소에도 맥시멀 리스 트라는 말을 종종 들었을 만큼 짐이 많았던 터라 처음 이사 온 날은 쌓인 짐 박스를 보고 막막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곧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듯 시간을 가지고 집을 정리해갔다. 별다른 콘셉트를 정하지는 않았고 생물인 식물 먼저 공간에 배치한 후 눈에 띄는 가구와 소품들을 하나하나 배치했다. 워낙 어릴 적부터 방 안의 가구들을 이리저리 옮기는 일로 기분 전환을 했던 그녀인지라 매일 집을 애정 있게 바라보며 조금씩 물건을 옮겨가며 공간을 채워갔다. 그녀의 인스타그램(@sosopub)에서 볼 수 있는 “집은 사람 같다. 늘 관심을 갖고 만져줘야 예뻐지고 좋아진다”라는 말처럼 집 안에 쌓인 먼지는 곧 나에게 쌓인 먼지 라는 생각으로 청소도 열심히 한다. 그녀는 무언가를 돌보는 일에 능숙하다. 타인을 위해 요리를 만드는 일이나 가게와 집에 가득한 식물을 관리하는 일도. 오랜 세월 함께한 가구를 관리하는 일처럼 말이다. 그녀는 새로운 공간에서 마치 스스로를 돌보듯 오늘도 집을 가꾸고 정리한다.

 

 

 

취향으로 가득한 공간

1 식물원이 연상될 정도로 방을 가득 채운 식물들. 관리 하기 어려울 것 같아 보이지만 몬스테라 같은 식물은 키우기에도 용이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캐비 닛은 오투 가구, 침구는 데코뷰, 침대는 무인양품. 오른 편의 빈티지 라디오는 실제 작동되는 제품이다. / 사진=김덕창

 

집은 물론이고 가게까지 직접 셀프로 인테리어했던 김제인 씨. 그 덕분에 여러 시행착오를 온몸으로 겪었고 자신만의 인테리어 팁을 쌓을 수 있었다. 액자 레일을 활용하면 리모델링 없이도 원하는 곳에 조명과 행인 플랜트를 달 수 있고, 형광등보다는 간접조명을 사용하면 따뜻함이 감도는 공간을 완성할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집에는 옷방으로 이용되는 공간 외에는 모두 형광등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새로 만들어 반듯한 물건보다는 시간이 묻어나는 것들을 좋아하는 확고한 취향 덕에 구매한 가구들 대부분 한번 사면 쉽게 버리지 않고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 살아간다. 이렇게 타인을 의식해서 꾸민 공간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익숙한 것들로 가득한 이 공간에서 그녀는 어느 때보다 가장 행복하다. 우연히 읽은 책에서 발견한 문구인 “모든 인간의 불행은 고요한 방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는 능력이 결핍된 데에서 비롯된 다”라는 말에 동감하며, 지난 10년간 온전히 있지 못했던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그녀는 이 집에서 한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여유로운 삶을 누릴 예정이다.

2 스물한 살 때 거실 소파와 함께 구매했던 화장대용 콘솔. 세월이 흐른 만큼 망가진 부분도 있지만 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신 레이스 천을 활용해 화장대에 로맨틱한 느낌을 더했다. 3 골드 사다리 행어는 윤현상재 벼룩시장에서 데려온 프롭에이의 제품. 4 김제인 씨의 집에는 유독 조명이 많다. 가게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을 모두 집에 가져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명이 늘어난 것. 조명은 이베이와 연남동의 빈티지 소품 숍인 플뤼에서 주로 구매했다. / 사진=김덕창


 

 

리빙센스 2020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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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심효진 기자 진행 권새봄(프리랜서) 사진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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