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가격 판정 불가능하다’며 손해 인정하면 안 돼”
“차명으로 월급 받았으나 사업에 공헌···전액 유죄 아냐”

조현준 효성 회장. / 사진=연합뉴스, 편집=디자이너 조현경
조현준 효성 회장. / 사진=연합뉴스, 편집=디자이너 조현경

효성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주장하며 1심 판단에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했다.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오석준 부장판사)는 8일 오후 조 회장의 항소심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날 대부분 시간은 조 회장 측이 프레젠테이션(PT)을 통해 1심 유죄 판결을 반박하는 데 소요됐다.

조 회장 측은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효성의 미술품 투자회사 ‘아트펀드’와 관련 배임 혐의에 대해 “논리적으로 모순적인 판단이다. 상당히 억울하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1심은 조 회장이 아트펀드의 미술품 매입을 결정하는 지위에 있었는데, (아트펀드가) 특수 관계인의 제품을 적정가격보다 비싸게 매입하게 해서 아트펀드에게 액수불상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인정했다”라며 “(그러나) 1심은 또 미술품은 가치가 균등하다는 보장이 없고, 거래가 많지 않아 미술품 가격 판정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가격을 알기 어렵다고 하면서 적정가격보다 비싸다고 한다면 손해를 끼쳤다고 할 수 없고, 이는 논리적으로 모순적인 판단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배임죄는 재산상 손해발생이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로 증명돼야 하고, 가볍게 액수미상의 배임죄를 인정하면 안된다”라며 “이 사건처럼 미술품의 시가를 알 수 없다면서 적정가격보다 비싸게 매입했다고 한다면 가볍게 액수미상의 배임죄를 인정한 사례가 된다”라고 1심 판단을 비판했다.

변호인은 “아트펀드의 2007년 기준 원화구입액이 2008년 원화구입액보다 비싼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환율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가격이 내려갔다고 볼 수 있다”라며 “(그러나) 원화가격이 아닌 달러 가격을 보아야 한다. 미술품 매입가격 산정과정에 조 회장이 개입해 가격인상을 지시한 사실도 없다”라고 말했다.

또 “미술품 구입은 최종적으로 한국투자신탁(한투)가 결정한다”라며 “효성이 독단적으로 배임 범죄를 저지를 수도 없고, 효성이 재산보호라는 임무를 위배한 잘못도 없어 배임죄 성립이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조 회장 측은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HIS)에서 근무하지 않은 측근에게 허위 급여를 준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은 “급여 지급 절차가 일반 임직원과 달랐고 차명으로 받았다는 점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건 인정한다”면서도 “해당 사업에 대한 공헌 등을 감안하면 피고인이 아무 이유 없이 자금을 가져갔다고 하기에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라고 했다. 또 “금액 전체에 대해 횡령죄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검찰은 이날 기일에서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음달 13일 오후 2시10분 공판을 열고 조 회장 측이 신청한 증인 3명에 대해 신문하기로 했다.

◇ 1심, 징역 2년 실형 선고···범죄액수 가장 큰 GE 배임 혐의는 무죄

조 회장은 2013년 7월 발광다이오드(LED) 제조회사인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GE)의 상장이 무산된 후 외국투자자의 풋옵션 행사에 따라 투자지분 재매수 부담을 안게 되자, 그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GE로부터 자신의 주식가치를 11배 부풀려 환급받는 방법으로 GE 측에 179억원의 손해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GE는 조 회장이 발행주식 상당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조 회장은 또 2008년 9월~2009년 4월 개인자금으로 구매한 미술품 38점을 아트펀드에 비싸게 판매해 12억원의 차익을 취한 혐의도 받는다. 아트펀드는 조 회장이 2008년 효성그룹의 연대보증을 통해 대출을 받은 약 300억원으로 만든 미술품 투자 회사다.

조 회장은 이밖에 2007년~2012년 3월 효성의 직원으로 근무하지 않은 김아무개에게 허위급여 약 3억7000만원을 지급해 임의로 사용한 혐의, 2002년 2월~2011년 12월 한아무개씨에게 12억4300만원의 허위 급여를 지급한 혐의도 받는다.

1심은 범죄액수가 가장 큰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GE) 배임 관련 혐의에 무죄를, 아트펀드 배임 및 허위급여 횡령 혐의에는 각각 유죄를 선고했다.

1심은 조 전 회장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으나, 형사소송법 제70조가 정한 구속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하지는 않았다. 해당 조항은 주거 부정, 증거인멸 염려, 도망 염려 등을 구속의 사유로 정하고 있다. 법원은 구속사유를 심사할 때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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