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수요자체가 없는 상황···일시 금융지원도 필요”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에 설치된 스크린에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표시돼 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5월물 가격은 장중 한때 배럴당 7.4% 내린 19.92달러에 거래됐으며 브렌트유 5월물 가격도 30일 17년 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 사진 =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에 설치된 스크린에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표시돼 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5월물 가격은 장중 한때 배럴당 7.4% 내린 19.92달러에 거래됐으며 브렌트유 5월물 가격도 30일 17년 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 사진 = 연합뉴스

국내 주유소들이 유가 하락과 수요 부진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에 업계에선 ‘유류세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수요가 막힌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마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주유소들이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기름값이 하락했음에도 수요가 부진해 마진이 줄어든 탓이다. 통상적으로 기름값이 떨어지면 수요가 급증해 판매량 증가가 보장됐던 것과 다른 모양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석유 패권을 증산 경쟁을 벌이면서 최근 국제 유가는 폭락세를 이어왔다. 그 여파로 국내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300원대로 떨어졌다.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400원 선 아래로 내려간 것은 유류세 인하 정책 시행 5개월째였던 지난해 4월 초 이후 약 1년 만이다. 

지난 3일 오전 서울시 은평구의 한 주유소. 휘발유가 전국평균 가격보다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음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사진 = 김용수 인턴기자
지난 3일 오전 서울시 은평구의 한 주유소. 휘발유가 전국평균 가격보다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음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사진 = 김용수 인턴기자

그러나 업계에선 코로나19로 수요 심리가 위축돼 기름값 인하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중구에서 GS칼텍스 주유소를 운영하는 A씨는 “예전엔 기름값이 떨어지면 손님도 늘어서 마진이 많이 남았지만 지금은 시장 자체가 얼어버린 것 같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름값 인하는 주유소 수익만 악화시키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은평구에서 에쓰오일 주유소를 운영하는 B씨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기름값 내리는 걸 손님들이야 반기겠지만 우리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며 “코로나19 영향으로 외출이 줄어서 그런지 전체 손님 자체는 3분의 1 이상 줄어든 것 같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마저 얼어붙고 있다는 것은 통계상으로도 확인됐다. 한국석유공사의 월간수급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석유제품 소비는 전년 동월 대비 2.1% 감소했다. 휘발유(-5.9%), 경우(-4.7%) 등에 대한 소비가 일제히 줄었다. 주유소협회는 “주유소 매출이 전년 대비 30%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이동 등에 제한을 받은 시기가 3월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 일각에선 ‘한시적 유류세 인하’ 주장이 제기된다. 현재 기름값에는 금액과 상관없이 리터당 세금이 붙는다. 정유사가 원유를 국내로 들여올 때 수입부과금과 관세가 붙고 교통세, 교육세, 지방주행세 등 정액 개념 유류세가 붙는다. 여기에 총액 10%의 부가세가 추가된다. 휘발유값이 리터당 1400원이라면 세금이 800원 이상을 차지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름값의 약 60%가 세금이라 국제유가가 떨어져도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그대로 판매 가격에 반영할 수 없다”며 “휘발유와 경우 등 석유제품에 대한 소비를 진작하기 위해선 한시적으로 세금을 인하해 판매 가격을 그만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유류세 인하만으로는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에 대한 수요를 진작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코로나 사태는 유가의 증폭과 관계없이 수요 자체를 막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를 통해 단기적 수요를 자극하는 것은 유효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코로나 사태가 보다 장기화하면 여러 가지 추가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정유업계의 어려움은 일시 금융을 통해 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현우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금은 전반적으로 소비 심리가 위축돼있는 탓에 휘발유와 경우 소비만을 진작하기 위한 묘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소비 심리가 덜 가라앉도록 하는 정책을 통해 수요가 회복되면 휘발유와 경우 소비도 진작될 것”이라면서도 “정유회사에서 지금까지 유가 상승했을 때 벌어 둔 돈으로 자체적으로 네트워크를 유지·관리하는 정도가 주요소가 기대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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