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익잉여금 통칭 사내유보금···“예기치 못한 위기극복 위한 보루”
신용도하락 불가피한 시기업들, 부동산 매각 바탕 현금 확보 열 올려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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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사내유보금’이 기업의 안정성을 가늠하는 새로운 지표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반적인 경제활동이 둔화되고 수요 또한 급감하면서 유동성이 악화된 기업들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위기 수준을 넘어 존폐의 기로에 내몰리는 양상이다. 유보금이 높은 기업들의 생존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내유보금이란 기업의 잉여금을 일컫는다.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을 합쳐놓은 개념으로 통칭된다. 정식 회계용어는 아니다. 회계전문가들은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을 철저히 구분 짓는 까닭에 사내유보금이란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용하지 않고 남겨놓은 자본금 그리고 이익금 중 주주배당 등을 통해 분배한 후 잔여 이익금을 흔히 사내유보금이라 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하기 전까지 주요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기업이 투자 등을 통해 돈을 풀지 않고 곳간에만 쌓아둔다는 지적이었다. 정치권에서 이를 두고 팽팽히 맞선 바 있다. 일정부문 한계를 드러낸 낙수정책을 펼쳤던 전 정권세력과 이에 반하는 정당 간 쟁점이 됐던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사내유보금이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이를 쟁점화 해 주목을 받았을 뿐, 기업이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자체만 봤을 때 논란이 될 여지가 없었던 부분”이라면서 “주주들 입장에서 보다 높은 배당수익을 올리고 싶겠지만, 기업의 미래를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하거나 비상상황에 닥쳤을 때 회사를 지킬 수 있는 여력이 바로 곳간에 쌓여있는 현금에서 오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높은 잉여금은 기업들의 신용평가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늘(6일) 기준, 코로나19 감염사례가 보고된 국가는 총 213개국이다. 한국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직격탄을 맞은 국가다. 자연히 이에 따른 기업들의 피해도 다른 국가들보다 선제적으로 발생했다. 복수의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주요 한국기업들의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북미·유럽·중국 등 3대 자동차시장의 판매부진과 코로나19 등에 따른 생산차질이 불가피한 현대자동차그룹도 그 중 하나였다. 이와 함께, 유가폭락까지 더해져 ‘마이너스 마진율’ 기록이 예상되는 주요 정유·화학업체들도 신용평가서 강등을 맛봐야 했다. 대형 유통업체들을 비롯한 주요 수출효자 업종들의 부진도 가시화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곳은 현대차와 기아차다. 사업적 부침이 확실시 되는 가운데 12조원이 넘는 현금보유고를 바탕으로 “상당기간 위기를 버틸 수 있을 것”이란 평을 얻어내고 있다. 투자은행 업계에서는 정기평가 시즌이 도래한 국내에서도 각 기업의 신용등급 하향은 불가피하지만, 현금보유고를 바탕으로 하향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일반적으로 신용등급이 하락될 경우 회사채 발행 등에 제한이 생긴다. 자금조달이 전보다 어려워진다. 이 때문인지 주요 기업들 중에서는 부동산자산을 매각해 현금보유고를 높이려는 곳들이 속속 나타나는 추세다. 사내 정치적 이해관계, 사업구조 개편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만, 현금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란 공통분모를 지녔다.

코로나19에 따른 전례 없는 항공수요 감소로 벼랑에 내몰린 한진그룹은 한옥호텔 건립을 추진하던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와 인천 왕산마리나 부지 매각을 계획 중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달 27일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이번 매각계획이 자구노력의 일환임을 시사하며 “자본확충 등으로 회사 체질을 한층 더 강화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언급했다.

신세계는 최근 서울 강서구 마곡부지를 8158억원에 매각했다. 당초 이곳은 스타필드가 드러설 것으로 유력시 되던 곳이었다. LG그룹은 중국 소재 베이징트윈타워 매각을 확정했으며, CJ그룹도 서울 가양동과 영등포공장 부지를 각각 1조500억원, 2300억원에 매각했다. 고(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 손복남 CJ 고문,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미경 CJ그룹 부회장과 기거하던 가옥이 있던 CJ인재원도 520억원에 매각해 경영정상화에 힘을 보탰다.

재계 관계자는 “사업을 하다보면 크고 작은 위기들에 끊임없이 노출되기 마련이고, 대부분의 위기들은 이번 코로나19와 같이 예기치 못한 시점에서 찾아오곤 한다”면서 “전에 없던 감염증 위기상황에 내몰린 상황에서 각 기업이 보유한 사내유보금은 당초 취지에 맞게 위기를 극복하는 데 기업의 여력을 높이는 주효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고 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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