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지난해 9월부터 협약 추가 내용 요구···현대차 추천 이사 경질·노동이사제 도입 등
2일 기자회견서 사업 참여 중단·협약 파기 공식화···“‘밀실’·일방적 협약 동의 못해”
광주시 등 협약 추가 내용 요구 거절···광주형일자리 사업 사실상 좌초 수순 전망

2일 오후 광주 서구 광주시청 앞 광장에서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가 광주형 일자리 불참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일 오후 광주 서구 광주시청 앞 광장에서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가 광주형 일자리 불참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첫 노·사·민·정 상생형 일자리 모델로 주목 받아왔던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좌초될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노총 등 노동계가 광주시와의 협상 과정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사업 참여 중단과 협약 파기를 공식선언하면서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대선 당시 핵심 공약 중 하나였고, 정권 출범 이후 국정과제 우선순위로 진행되며 최근까지도 문 대통령이 직접 챙길 정도였다. 하지만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제동이 걸리면서, 함께 진행돼왔던 구미·울산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 등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노사모델' 주목받던 상생형지역일자리···지난해 1월 협약서 도출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의 주요 정책 중 하나로 지방자치단체, 기업, 근로자, 주민 등 다양한 경제주체 간 근로여건, 투자계획, 복리후생·생산성 향상 등에 대한 합의를 기반으로 지역의 투자를 촉진하고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이다.

특히 노·사·민·정이 상생협약을 체결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이 신청하면 상생형 지역 일자리 심의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해 사업이 선정되는 방식은 그간 첨예한 갈등을 겪어왔던 노사관계를 회복할 방안으로 떠올라왔다.

또한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에 선정될 경우 지방자치단체는 기업에 투자보조금 지원, 취득세·재산세 감면, 도로건설 등 인프라 구축 등을 중앙정부는 지방투자촉진보조금 지원, 투자세액공제 지원, 임대전용 산단 등 입지 지원 등의 혜택을 각각 부여한다는 점도 관심을 모았다.

근로자에 대해서도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는 행복주택 및 공공임대주택 지원, 근로자 건강증진 등 복지 지원, 청년내일채움공제 지원, 산단 기숙사·통근버스 지원, 복합문화센터 등 편의시설 확충, 직장 어린이집 등 보육 지원 등도 약속해 해당 모델이 정착할 경우 노동시장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이에 노·사·민·정은 지난해 1월 30일 ▲주 44시간 노동, 평균 초임 3500만원 ▲35만대 생산 시까지 임·단협 유예(5년 이상) ▲동반성장과 상생협력 등 내용을 담은 협약서를 도출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11일 ‘2020년 업무계획 보고’에서 “지역 주도형 일자리 창출 매진, 규제혁신과 투자, 인센티브 강화, 데이터경제 확산 및 신산업 육성, 세대·계층별 맞춤형 일자리를 강화해야 한다”며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의 정착에 한층 힘을 싣는 분위기도 관측됐다.

이와 같은 기대감 속에서 해당 사업 관련 협상에 속도가 붙는 듯했지만, 지난해 9월부터 노동계에서 반발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노총 등 노동계가 협약에 ▲현대차 추천 이사 경질 ▲노동이사제 도입과 원·하청 관계 개선 시스템 구축 ▲임원급 임금을 노동자의 2배 이내에서 책정 ▲시민자문위원회 설치 등을 협약에 추가해야 한다고 나서면서다.

◇한국노총 "'노동이사제', 노사 상생경의 전제"···광주시 "별도 논의 있어야"

광주시 등이 해당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결국 한국노총 등 노동계는 지난 2일 광주형 일자리 사업 참여 중단·협약 파기 결정을 공식화했다.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는 광주시청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형 일자리가 비민주적이고 비상식적으로 추진되었으며 정치놀음으로 전락했다”며 “광주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집과 독선, 비밀협상으로 일관했다”고 밝혔다.

현재 협상이 ‘밀실협상’으로 진행되고 있고, 광주시가 합의문을 공개하지 않는 등 사측(현대차 등)의 눈치를 보고 있을 정도로 일방적인 협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또한 적정임금 협약도 사업의 원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노동계는 ‘노동이사제 도입’ 문제는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의 핵심인 노사 상생경영의 전제임에도 광주시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함께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계의 발표 직후 광주시는 즉각 해명에 나섰다.

우선 광주시는 적정 임금, 적정 노동시간, 원하청 상생 방안, 노사 상생, 사회통합 일자리 협의회 구성, 지난해 1월 31일 투자협약서 공개 등 6개 항목의 노동계 요구 사항을 모두 수용할 수 있지만, 노동이사제 등 내용을 협약에 추가해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지난해 1월까지 협약이 5년 가까이 늦어진 이유 중 하나가 노동이사제 도입 여부였다”며 “오랜 진통 끝에 노·사·민·정 협의회가 도입이 이른 감이 있다는 인식에서 노동이사제를 협정서에 포함하지 않았고, 이 협정서는 우리에게는 헌법이나 마찬가지여서 새로운 의제를 채택하려면 별도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측이 이와 같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사실상 좌초 수순을 밟게 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상징적인 정책 중 하나로 공을 들여왔는데 매 단계가 쉽지 않다”며 “협약 당시 노·사·민·정의 다양한 논의와 설득을 통해 진행됐음에도 이렇게 재차 갈등이 발생돼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협약에 누락된 부분이 있다면 논의를 거쳐 수정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논의가 일단락된 부분 등을 양측이 서로 끝없이 주장한다면 접점을 찾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또한 노동계가 협약 파기를 공식화한 이상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다시 진행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덧붙였다.

통합당 한 관계자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결국 노사 어느 쪽에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인다”며 “애초에 풀기 힘든 노사관계에 정부가 개입해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정권의 과도한 자신감이었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이 진행 중인 구미, 울산 등 지역에서도 이번 광주형 일자리 사업 좌초에 따라 노사 어느 쪽에서든 문제제기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며 “노사 문제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당시 핵심 공약 중 하나다. /사진=연합뉴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당시 핵심 공약 중 하나지만, 노동계의 반발로 좌초될 위기 앞에 놓였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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