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낭비 방지…“채무자 제재 없는 지원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미국 법원 “면허제재 수단과 목적 사이 합리적 연관성 존재”

‘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지난 2018년 10월 8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과 양육비 미지급 부모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지난 2018년 10월 8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과 양육비 미지급 부모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출신 김동성씨가 두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양육비 채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온라인 사이트 ‘배드파더스’에 등재돼 논란을 낳고 있다. 활동가들은 유명인들의 양육비 미지급 사례가 ‘폭로’로 끝나서는 안 되고,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양육비 이행을 강화하기 위한 입법 활동으로 옮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양육비 이행 강화 조치를 위한 방편으로 가장 효과적이고 우선적인 입법 과제가 채무자의 운전면허를 취소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양육비와 운전면허 취소 사이의 인과관계가 불분명해 법률적으로 ‘부당결부금지 원칙’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 또한 제기된다.

하지만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때 운전면허를 정지하는 행정처분은 이미 미국에서 1990년대 이래 시행되고 있다. 미국은 어떤 이유로 양육비 채무자의 운전면허 등에 제재 가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봤다.

◇ 면허정지 통해 양육비 공공성·조세지출 효율성 높이는 미국

미국은 양육의 공공성과 조세지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양육비 미지급을 면허정지 대상으로 삼고 있다. 양육비 지급이라는 부모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채무자를 방치한 채 빈곤한 한부모 가족을 구제하는 국가의 의무만을 수행하다 보면, 요긴하게 쓰여야 할 세금이 낭비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은 1990년대부터 주 정부별로 양육비 이행 강화 방안으로 면허증 제재 조치를 취했다. 1998년 미국의 모든 50개 주는 양육비 지금 불이행 시 각종 면허증 및 허가증을 제한, 정지, 취소하는 법적·행정조치를 마련하게 됐다. 여기서 말하는 면허증은 운전면허증뿐만 아니라, 사업면허증, 직업면허증, 전문직면허증, 여가면허증 등도 포함됐다. 주 정부에 따라 총기면허증을 제재하는 곳도 있다.

이 과정에서 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양육비 연체 내지는 미지급을 이유로 운전면허 등을 정지 및 취소시키는 것이 합헌적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이를 ‘부당결부금지 원칙’이라고 한다.

부당결부금지 원칙이란 행정기관이 행정작용을 함에 있어 상대방에게 그것과 실질적 관련성이 없는 의무를 부과하거나 그 이행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교통법규 위반을 이유로 비영리 단체허가를 거부하는 처분은 부당결부금지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판례가 있었다.

미국은 부당결부금지의 원칙과 유사한 ‘합리성 기준심사’를 적용했다. 법규 등이 합헌적인가를 평가할 때 법규 등이 합법적인 정부 이익에 부합하는지, 또 법규 등이 수단과 목적 간에 합리적 연관성이 있는지를 검토한 것이다.

◇ 다수 판결 “면허제재, 수단과 목적 사이 합리적 연관성 인정 돼”

미 주대법원은 양육비 미납 관련 제재 법규·법률은 합법적 정부 이익에 부합하며, 양육비 이행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면허의 제재는 수단과 목적 간에 합리적 연관성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실제 알래스카에 거주하는 Paul Bean은 양육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운전면허가 정지돼 소송을 냈다. Bean은 재판에서 양육비 미지급과 운전면허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알래스카 대법원은 지난 1998년 이 둘 사이 합리적 관련성은 운전면허 제재가 양육비 이행 수단으로서 효과적인지의 여부에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운전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하는 조치로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이는 법적 수단이나 목적 간에 매우 분명한 연관성이 있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운전면허와 양육비 지급이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근거를 운전면허를 제재하는 것이 양육비 이행을 촉구하는 데에 효과적인지의 여부로 판단한 것이다.

2006년 워싱턴주 대법원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택시면허가 정지된 Greg에게 “국가가 발행하준 면허증으로 경제적 이득 취하려고 한다면 정부에게 자녀 부양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양육비 미지급과 면허 정지 사이에는 합리적인 연관성을 지닌다”고 판결했다.

2011년 애리조나주 고등법원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문직 면허를 취소하는 판결문에서 “자녀를 부양하지 않았다는 것은 전문가로서의 자질과 적합성(appropriate character and fitness)이 결여되어 있음을 증명한다”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국회입법조사처 허민숙 조사관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채무자들을 대신해 국가가 세금을 통해 아동빈곤을 예방할 수는 있으나, 이는 다른 곳에 요긴하게 쓰여야 할 세금이 누수되고 양육비 지급에 관한 사회규범이 정착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초래한다”며 “현시점에서는 부당결부금지 원칙 위반이라는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양육비는 아동의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랄 권리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제때 지급되어야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며 “우리 사회의 모든 아동이 부모의 혼인상태와 관련 없이 무사히 성장할 수 있도록 양육비 이행을 강화하는 조치 마련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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