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코로나19로 금융시장 신용경색 우려
“비상상황 대비해 안전장치 마련해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으로 출근하면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 상황이 악화할 경우 회사채 시장 안정을 위해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회사채 시장 등 국내 금융시장에서 신용경색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안정장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총재는 지난 2일 오후 간부회의를 소집해 회사채·기업어음(CP) 시장 등 금융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이같이 밝혔다. 회사채 시장 불안이 심화할 경우 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을 상대로 직접 대출을 해 신용경색을 막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1일 채권시장안정펀드가 가동되고 2일 한은의 전액공급방식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이 시작됐다”며 “회사채 만기도래 규모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시장의 자체 수요와 채안펀드 매입 등으로 (회사채가) 차환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그러나 앞으로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전개와 국제 금융시장의 상황 변화에 따라 회사채 시장 등 국내 금융시장에서 신용경색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한은으로선 비상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은은 기본적으로는 은행 또는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시장안정을 지원하지만 상황이 악화될 경우에는 회사채 시장 안정을 위해 한국은행법 제80조에 의거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해 대출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법 제80조는 금융기관 자금 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한은이 금융통화위원회 의결로 금융기관이 아닌 금융업 등 영리기업에 여신을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한은이 한은법 제80조를 적용해 대출한 사례는 외환위기 시절이 유일하다. 당시 한은은 종합금융사 업무정지 및 콜시장 경색에 따른 유동성 지원을 위해 한국증권금융(2조원)과 신용관리기금(1조원)에 총 3조원을 대출했다. 

이에 비은행 금융기관을 상대로 한 한은 대출이 시행될 경우 증권사 등의 자금난을 덜어주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은은 구체적인 대출 조건이나 시행 시기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한은 관계자는 “향후 시장 상황을 봐가며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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