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돈 많은 대기업 돈줄 끊기면 더 급속히 무너져”
매출 80% 나오는 해외 생산기지 문 닫은 현대차 현금 확보 ‘발등의 불’
현금 두둑한 삼성전자는 사업 내실화 힘쓸 듯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 / 사진=연합뉴스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 / 사진=연합뉴스

경제적 위기 상황이 감지되면 사람들은 일단 주머니를 닫고 현금을 지키려 한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현금성 자산 확보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1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들은 모두 현금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새로운 고용 및 투자를 최소화하고 ‘버티기 싸움’에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S&P는 31일(현지 시각)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3%에서 0.40%로 낮췄다.

위기 상황 속에 기업들이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리스크 헷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출이 나온다고 해서 바로 현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급격히 무너져 흑자 도산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두 번째는 인수합병(M&A) 기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박주근 CEO스코어는 “위기를 못 견디고 넘어가는 기업들이 나타나면 인수합병에 나설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현금을 확보하려는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현금성 자산 확보 움직임은 전자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그만큼 생존 자체가 실력이 돼버린 상황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불필요한 활동을 줄이고 면역력을 키우려는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현금성 자산 확보는 대기업들이 오히려 더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경기 영향을 크게 받고 이런저런 고정비가 많이 나가는 탓이다. 한 재계 인사는 “대기업은 크니까 천천히 망할 것 같지만 반대로 벌여놓은 것이 많아서 한 번 돈줄이 끊기면 손 쓰기 어렵게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고 전했다. 언제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모르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선 마냥 ‘대마불사’를 믿고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우선 코로나19 여파가 가장 큰 항공업계의 경우 현금 확보에 목말라 있다. 매출은 안 나오는데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은 많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진에어는 상황이 좋다. 1년8개월간 이어진 국토교통부 제재로 투자를 못해 역설적으로 현금성 자산이 두둑하기 때문이다. 투자를 못 해 위기를 맞았지만 적어도 버티는 싸움에선 유리해 보인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현금성 자산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대한민국 빅2 기업으로 꼽히지만 현금성 자산 모으기 비상에 걸렸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는 해외 투자, GBC 관련 작업 등 앞으로 현금 들어갈 일이 굉장히 많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산업의 재정립에 맞춘 구조조정 등과 관련해 현금이 있어야 능동적 대처가 가능해 현금성 자산 확보가 꼭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앞으로 돈이 들어올 곳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현대차의 마음을 다급하게 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금 해외 공장은 거의 문 닫은 상황이고 중국·멕시코 공장만 돌아가고 있으며 이마저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서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인 것을 감안하면 현금성 자산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대차로선 결국 나가는 돈을 줄이는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은 계열사들에게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라는 특명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대차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연결기준 8조6820억원, 별도기준 3820억원이다.

현대차와 함께 대한민국 경제를 이끄는 삼성전자는 그나마 현금성 자산이 두둑한 편이다. 지난해 말 기준 26조605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박주근 대표는 "자동차는 캐피탈 등을 통해 구입하기 때문에 판매한다고 해서 바로바로 현금화되지 않지만 반도체는 다르다"라고 삼성전자의 상황이 그나마 현대차보다 나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사업 구조조정을 이루고 내실 다지기에 힘쓰는 모습이다. 지난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을 다녀간 후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생산을 접고 QD 시장 진출에 집중키로 했다. 이와 더불어 재계에선 삼성이 경쟁력 있는 해외 기술 기업들을 사들이며 시장재편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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