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다큐멘터리 “누들로드” “요리인류” 등으로 국내 음식 다큐멘터리의 새 장을 열며 유명해진 이욱정 PD가 이번엔 남산 자락에 자리 잡고 요리를 통한 도시 재생을 꿈꾼다.

1 총 4층으로 이뤄진 검벽돌집의 2층과 3층에는 쿠킹 클래스를 할 수 있는 주방 공간이 마련돼 있다. 2 박원순 시장이 검벽돌집에 다녀간 흔적. 3 이욱정 PD는 검벽집을 통해 시민과 소통하는 장을 마련코자 한다. 4 이날 행사를 맞아 태극당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빵들을 전시해놓았다. 5 남산타워가 바라보이는 회현동 언덕에 자리 잡은 검벽돌집. 옛 방직공장을 개조했다. / 사진=서민규

 

요리를 통한 도시 재생

남산타워가 한눈에 보이는 회현동 굽이굽이 언덕을 오르면, 이곳에 ‘요리인류 검벽돌집’이 있다. 검벽돌집은 본래 오래되어 쓰지 않던 옛방직공장을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합심해 시민 참여가 가능한 공간으로 개조한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공간을 이욱정 PD가 이끄는 그룹 ‘요리인류’가 맡아 운영 중이다. <누들로드>와 <요리인류> 등센세이션을 일으킨 KBS의 식문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PD답게 현재 검벽돌집은 ‘요리를 통한 도시 재생’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아주 오랫동안 인류는 밥을 통해 교류를 해왔습니다.

특히 ‘밥은 먹었냐’가 인사말인 만큼 우리 민족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밥’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이들이죠.” 단순히 음식을 넘어 음식 전반을 둘러싼 식문화에 대해 인류학적 접근을 하는 이욱정 PD의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혼밥’ ‘혼식’ 문화가 퍼지면서 식사를 통해 사람 간에 온기를 나누고 교류하는 일이 줄어들고 있어요.” 이욱정 PD가 이 공간에서 하려는 것은 바로 밥상머리에서 이뤄지는 교류를 되살리는 것. 그가 만든 식문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다함께 이야기와 식사를 나누기도 하고 식문화 관련 저명인사를 초청한 토크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남산골 서울의 맛

1 태극당의 브랜드 스토리와 함께 태극당의 빵을 시식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반 빵 속에 카스텔라가 들어 있는 특이한 ‘오란다빵’과 직접 만든 사과잼을 넣어 돌돌 만 ‘롤빵’ 등을 다 함께 나눴다. 2 이날 프로그램에서 제공한 ‘서울의 맛’ 도시락. 태극당의 스테디셀러인 사라다빵이 도시락으로 제공됐다. 참가자들에게는 매회 주제에 따라 다른 도시락이 제공된다.

 

‘남산골샌님’이라는 말이 있다. 돈은 없으면서 자존심만 센 선비를 이르는 말이다. 그 단어처럼 남산 자락에는 권세와는 거리가 먼, 그러나 선비로서의 기품은 지키려고 하는 지금 말로 하면 ‘아웃사이더’들이 모여 살았다. 서울에서도 북촌과 함께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동네. 이욱정

PD는 이곳을 ‘서울의 맛’을 대표하는 지역으로 본다. “제가 생각하는 서울의 맛은 다름의 맛, 아주 이질적이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어우러진 맛이거든요.” 남촌이라고도 부르던 곳에는 몰락한 양반들뿐 아니라 중국인,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이들이 모여들어 다채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북병남주(北餠南酒), ‘북쪽 마을은 떡을 잘 만들고 남쪽 마을은 술을 잘빚는다’는 말에서 북쪽 마을은 북촌, 남쪽 마을은 남촌, 즉 남산 자락을 가리킨다. 권문세가가 많이 사는 북촌과 달리 몰락한 양반과 무반이 모여 살며 술을 빚어 호탕하게 돌려 마시던 동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 다양한 이들을 받아들인 남산골은 모든 문화가 뒤섞인 ‘다이내믹 서울’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남산의 맛, 서울의 맛’을 재조명하고 알리기 위해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인 ‘서울의 맛토크쇼’에서는 레스토랑 아미월의 유종하 셰프와 함께 특별한 도시락을 제작하기도 했다. 술을 빚는 마을이라는 의의를 살려 술지게미를 활용한 울외장아찌인 ‘나라즈케’ 등이 도시락 메뉴로 들어갔다. ‘서울의 맛’은 매회 다른 셰프와 오래된 서울의 음식점 등을 초청해 그 역사와 의의를 함께 이야기하고 음식을 나누는 프로그램.

식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누구나 참여할수 있다. “근처 정화예술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운영하는 쿠킹 클래스, 문학과 다큐멘터리와 식문화를 합친 ‘푸드오딧세이’ 등 시민이 참여할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놓았습니다.”

서울의 맛-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

이날의 ‘서울의 맛’ 프로그램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인 태극당이 함께했다. 1947년 문을연 뒤 서울 빵집의 역사를 써온 태극당은 이욱정 PD가 제작한 동명의 다큐멘터리 <서울의 맛>에 박원순 시장이 꼽은 ‘서울의 맛’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랜 세월 지켜온 역사를 3세대 손주들이 대를 이어오고 있는 태극당이니만큼 오래된옛 맛을 지켜내 이어가겠다는 ‘서울의 맛’ 프로그램과도 그 의미가 맞아떨어진다. 이날 이욱정 PD와 함께 토크쇼를 한 태극당의 3세대 신경철 전무이사는 태극당의 탄생 스토리부터 현재까지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참석자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많은 이가 우리나라의 제빵, 제과 역사가 일본에서 그대로 따온 것아니냐고 하지만 태극당만 해도 일본의 빵집에는 없는 메뉴들을 개발해 선보이며 우리만의 역사를 만들어냈거든요.” 배고픈 학창 시절 팥빵을 앞에 두고 데이트하던 나이 지긋한 이들의 이야기부터 최근 천연 발효빵의 트렌드에 관한 이야기 까지, 이날의 남산골은 맛있는 빵 내음으로 구수하게 익어갔다.

 

요리인류 검벽돌집

요리인류 검벽돌집에서는 시민이 참여할 수있는 다양한 유·무료 행사가 진행 중이다. 다쿠멘터리 <누들로드>를 보며 이욱정 PD와 이야기를 나누고, 다큐멘터리에 나온 국수를 함께 나누는 프로그램부터 매번 다른 셰프를 초청해 진행되는 ‘서울의 맛’ 프로그램, 쿠킹 클래스까지 참여하고 싶은 이들은 요리인류 클럽과 요리인류 검벽돌집 인스타그램을 체크해보자.

요리인류 클럽 @yoclubseoul

요리인류 검벽돌집 @yoclubnamsan

 

우먼센스 2020년 03월호

https://www.smlounge.co.kr/woman

진행 강윤희(프리랜서) 사진 서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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