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투입’ 국책은행 두산건설 매각 요구···두산重 “결정된 바 없어”
대우·극동건설 인수 애착 보였던 금호·웅진도 가시밭길···“경영오판”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두산중공업 위기의 진앙지 두산건설이 매각설에 휩싸였다. 막대한 자금투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회복하지 못한 두산건설이 매물로 나올 것이란 소식에 건설사가 그룹 존립의 위기를 불러일으켰던 금호·웅진 등 유사사례도 회자되고 있다. 과도한 애착으로 비춰질 수 있는 경영적 오판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다.

1일 업계 등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은 각각 5000억원씩 총 1조원의 자금을 두산건설 모회사인 두산중공업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자구책의 일환으로 두산건설 매각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산중공업 측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매각작업이 개시될 것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문제는 두산건설이 매물로서 매력이 있는지 여부다. 두산중공업이 부실자산 일부를 부담하고, 알짜 자산들을 중심으로 매각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늦었다’는 반응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두산 측은 두산건설을 매각해야 한다는 시장의 권유와 반대로 움직였다. 최근 10년 간 2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하며 회생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선택지였다.

두산건설은 지난 2009년 경기도 일산 위브더제니스 대규모 미분양 사태로 자금난에 봉착했다. 계속된 차입금에도 손실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결국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됐고, 상장 폐지가 결정됐다. 현재는 두산중공업의 완전 자회사로 남았다. 두산중공업은 지원을 위해 알짜 사업·자산 등을 매각했다.

결국 점차 사업여력이 감소한 두산중공업은 탈원전 정책 발표 후 능동적 대응에 실패하며 위기를 자초했다. 두산건설을 지키고자 했던 두산중공업과 두산그룹의 노력을 두고 ‘무리한 집착’이란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각에선 두산건설을 이끌었던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을 비롯한 오너가가 애착을 갖는 계열사다보니 냉정하게 칼을 대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두산과 같이 건설사에 대한 집착이 화근이 돼 그룹 차원의 위기를 불러온 전례들은 또 있다. 이제는 과거형이 된 금호아시아나그룹도 박삼구 전 회장의 대우건설 인수야욕이 화근이 됐고, 웅진그룹도 극동건설 인수 후 촉발된 유동성 위기로 벼랑 끝에 내몰린 바 있다.

금호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을, 2008년 대한통운을 연이어 인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하면서 자금 부담이 커짐에 따라 대우건설은 산업은행에 되팔았으며 대한통운도 CJ그룹에 매각해야 했다. 특히 대우건설의 경우 유사한 포트폴리오를 지닌 건설계열사가 있었음에도 단행한 인수여서 인수부터 매각까지 잡음이 심했다.

M&A 과정에서 현금을 마련하고, 인수 후에도 추가지원을 감행하느라 금호그룹의 자금난이 심화됐다. 일부 계열사들은 법정관리를 거쳐 매각을 피할 수 없었다. 박삼구 회장은 이후 그룹 재건을 위한 재인수 작업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유동성 위기가 고착화됐다. 결국 금호는 중추사업이던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고 중견회사로 전락했다.

한 때 ‘윤석금 신화’로 대표됐던 웅진그룹도 기존 주력사업과 무관한 건설사업으로의 확장을 도모했지만, 인수한 극동건설에서 촉발된 위기가 화근이 돼 코웨이 등 주력 계열사들을 매각하며 사세가 급속도로 위축됐다. 지난해 코웨이를 재인수했던 웅진그룹은 인수 3개월 만에 이를 재차 매각하고, 현재는 웅진씽크빅 위주로 내실 다지기에 주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두산 측이 두산건설을 무리하게 지키려다 사태를 키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무리한 확장’을 단행하다 쓴 맛을 봐야했던 금호·웅진의 사례처럼 오너의 경영적 오판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건설사가 갖는 상징적이고 실익적인 부분에 치우치고, 이에 집착하다 보면 이들과 같이 그룹 전반에 해를 끼칠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우건설 등 인수 직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재계 7위에 올랐을 만큼 건설사는 자산규모를 키우고 재계순위 상승에 도움이 된다”면서 “매출대비 실익규모가 작지만, 현금동원 능력이 우수하다는 장점도 지녔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경영방식은 결국 내실보단 외형에 초점을 맞춘 리스크가 큰 선택지임을 강조했다는 평가다.

이어 그는 “한국 경제사에서 건설업은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고 아파트를 지어내는 등 단기간 내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며 기업들의 성장을 견인했던 사업”이라면서 “이 같은 시기를 지내 온 오너경영인 입장에선 건설사에 애착을 갖게 될 수도 있겠지만, 과도한 애착과 판단착오에 기인한 무리한 인수는 결국 패착으로 이어짐을 여러 사례들이 방증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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